[대한뉴스=권영이 기자] 결실의 가을로 접어드는 9월이다. 극심했던 가뭄과 태풍을 견뎌낸 벼들이 들판에 출렁이는 모습이 대견하고, 만산홍엽의 가을 산에 도토리와 알밤을 줍는 아낙들의 손길이 바빠지는 계절이다. 되돌아보니 세월호의 아픔과 메르스의 악몽을 거치면서 선주 유병언의 구원파 치부가 드러나고 일류라는 삼성병원이 메르스 감염진원지가 되어 회장과 원장이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함으로 의료개혁이 이루어지더니, 롯데그룹의 ‘형제의 난’이 발발하여 대기업의 각종 비리가 도마에 올랐다. 사실 우리나라 재벌경영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족벌경영, 문어발식 확장경영으로 거의 폐쇄적 구조인데 이번 롯데그룹도 이런 부정적 요소를 갖춘 가운데 창업주와 두 아들 간 막장으로 가는 골육상쟁이 예견된다. 이러한 재벌의 퇴행적 행태를 방관하면 오히려 나라경제가 위태함으로 정부에서 재벌개혁의 칼을 뽑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데 가족 간의 사랑을 내팽개치고 오직 돈만을 죽기 살기로 쫓아가는 세태가 씁쓰름하다. 언뜻 TV에서 장례유품정리사라는 분이 나와 돈만 아는 각박한 세태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 독거노인의 시체를 수습하다가 가족사진 액자를 살피는데 액자에서 집문서와 현금 5백만 원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가족을 수소문하여 찾아온 아들이 집문서와 돈만 챙기고 아버지의 사진액자는 던져버리더라는 것이다. 팽배한 물질만능 배금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 가족 간 사랑이나 인간의 정은 다 깨져버리고 돈만 남았다.
역시 돈이 이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임을 이번 롯데그룹의 ‘왕자의 난’에서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돈 앞에서는 부모 형제 가족도 없는 우리나라 재벌들의 본색을 드러낸 사건이다. 롯데를 창업하여 94세의 노령에도 경영권을 놓지 못하고 이를 행사하기위해 장남(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포함하여 5명의 가족들을 대동해 5천만 원이 든다는 전세기를 내어 전격적으로 일본 롯데홀딩스를 방문하여 현장에서 차남(신동빈 롯데 회장) 외 6명의 이사를 해임함으로 언론에 그룹의 민낯을 드러내어 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전세기를 몰고 기습적으로 일본으로 건너온 아버지로부터 해임된 다음 날 신동빈 회장은 츠쿠다 다카유키 일본롯데홀딩스 사장과 긴급이사회를 개최하고 아버지(신격호 롯데 총괄회장)를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해임한 후 명예회장에 앉히고 본인들 해임 건은 무효처리하였다. 이후 장남은 귀국하여 KBS를 통해 부친 서명이 들어간 ‘해임 지시서’를 공개하며 아버지의 적법한 인사권 등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주주총회를 열어야 결판이 날것이란 형제간 피투성이 싸움이 연일 신문을 도배하며 왜 노령의 신격호 창업자가 저런 일을 벌였나 국민들의 의구심은 날로 증폭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일주일간 일본에 머물면서 자신의 경영능력을 인정하는 일본롯데이사들의 지지를 받아 12개의 L투자회사 대표이사로 자신이 취임하여 등기상 대표자 변경신청을 마쳤다고 한다. 해임 일주일 후 귀국한 신동빈 회장은 국민께 사과하고 롯데 계열사 현장을 직접 방문하며 챙기는 등 경영자로서의 자질과 본인이 롯데그룹의 차기 총수임을 과시하며 롯데 한·일사장단들의 지지성명을 끌어내고 노조의 공개적인 지지도 받았다. 이와 같이 국내재계 5위의 거대그룹이 경영권 분쟁으로 형제간 부자간 다툼으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창업자의 노욕이 큰 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국민들의 반롯데 정서가 확산되면서 그룹관련 주가가 일제히 추락하여 롯데계열사 시가총액이 2조원 넘게 증발하였고 장남이 일본어로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국적과 그룹정체성 논란까지 비화되었다. 폐쇄적 경영으로 베일에 쌓여있던 롯데의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문제되자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금감원까지 팔을 걷고 세무조사 자금흐름 조사 등으로 수술 칼을 들이 밀고 있다. 이러한 화를 자초한 경영권 분쟁에서 단연 문제로 부각된 것은 신격호 창업회장의 건강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공무원이나 일반기업은 60세면 정년퇴임하고 종교계에서도 지도자는 70세를 넘기지 않고 2선으로 물러난다.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전근대적인 ‘황제경영’을 하면서 독단적인 경영스타일에서 화를 불러들이게 되었다.
임원의 임명과 해임을 구두로 지시하거나 ‘지시서’ 한 장으로 인사를 총수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한다니 거대 그룹경영의 위험한 줄타기를 보는듯하다. 4년 전에 차남을 회장으로 임명하고서도 임명한 적이 없다거나 그가 롯데를 탈취했다고 주장한다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고 여겨질 것이 뻔하다. 잠실벌에서 123층으로 하늘 모르게 치솟던 그룹의 위용을 창업자가 자기 손으로 이미지를 무너뜨리고 있다. 롯데의 오늘의 최대의 문제는 총수가 적정한 나이에 후계자 선임을 하고 물러나지 않았음이 주원인이라고 생각된다. 노망수준의 노욕이 자초한 화(禍)이며 결자해지의 원칙으로 아직도 판단력이 남아있다면 하루빨리 가족과 두 아들에게 상속과 후계에 대한 교통정리를 하는 것만이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며 침몰하는 거함을 건져내는 최선책이 될 것이다. 또한 예견된 일이지만 창업자의 현재 법적부인인 시게미츠 하츠코가 남편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내세워 ‘한정치산자’나 ‘금치산자’ 선고를 법원에 신청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능성도 있어 치매나 심신미약 등으로 법률행위를 할 만한 의사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지금까지 인사권행사 등 법률행위가 무효화되어 한일 롯데는 하츠코와 신 회장에게 자연히 넘어가게 된다는 분석도 있다.
일단 장남도 주주총회를 위해 일본으로 갔고 주주총회를 통해 1차 싸움에 승자가 결정되더라도 결정에 불복하여 법정싸움으로 비화되고 여러 가지 후폭풍이 예상되고 있다. 결국 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속에 17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롯데그룹 회장측의 완승으로 끝났다.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 등 가족을 등에 업고 진행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쿠데타가 사실상 진압되고 신동빈 체제가 더욱 굳건히 강화되게 되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한다. 이번 롯데사태도 국가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고 영향을 주어 사태가 잘 마무리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