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뉴스=오화현 기자]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성주군(군수 김항곤)과 (재)대한문화재연구원(원장 이영철)이 6월부터 진행 중인 ‘성주 법수사지(星州 法水寺址)’ 발굴조사 결과, 법수사가 문헌의 기록대로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축조되어 사용된 절로 확인되었다.
성주 법수사지는 802년(신라 애장왕 3) 창건 당시 금당사(金塘寺)로 기록된 후, 고려 시대 중건하여 법수사라 하였다. 이번 조사는 보물 제1656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주변(5,691㎡)을 대상으로 시행하였으며 조사 결과, 통일신라 시대로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문화층이 확인됨으로서, 문헌에 기록된 초기 창건 관련 내용과 일치됨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은 자기류, 기와류, 청동합, 청동불상 등이다. 그 중 명문이 확인된 평기와에는 ‘□卯五月法水寺金堂’, ‘五月法水寺金堂’, ‘龍省□’이 타날(打捺)되었으며 막새편으로 추정되는 부분에서 ‘戊午三月十九日’라는 명문이 확인되었다.
1호 건물지에서 나온 청동합 대각부에도 ‘法水寺十王堂□□□□’라는 음각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이들 글자를 통해 건물지의 개축 연대와 관련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 정확한 내용은 현재 판독 중이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건물지는 대부분 고려 시대에 축조되어 조선 시대까지 유지된 것으로 확인된다. 2호 건물지의 경우 3번 이상의 개축이 이루어졌으며, 1호 건물지 또한 유사한 성격을 띤다.
중심구역에는 최소 6개 동의 건물지와 기타 시설물이 확인되었다. 건물의 배치는 중심구역 전면에 1호 건물지가 조성되어 있고, 중심으로 좌ㆍ우에 금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부속건물지가 어우러진 사역의 경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
1호 건물지는 동-서 방향으로 계단시설과 보도시설을 갖추어 2호ㆍ3호ㆍ5호 건물지로 이어진 동선을 갖추었는데, 이는 고려 후기의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어 가람배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금당지로 추정되는 2호ㆍ3호 건물지는 바닥에 전(塼)을 깔고 내부에 불단을 갖춘 구조로 불단은 세장방형(직사각형, 3호 건물지), 정방형(정사각형)의 2열(2호 건물지), 정방형의 3열(2호 건물지) 등으로 구분된다. 가구식 기단(架構式 基壇)의 설치와 석재 가공기술로 보아 격이 매우 높은 건물지임을 알 수 있다.
1677년(숙종 3) 간행된 성주 지방지인『경산지(京山志)』의 기록에 의하면 법수사지는 9금당, 8종각 등 무려 천 칸이나 되는 사찰이었다고 되어 있어 사역 규모가 합천 해인사를 능가하는 대규모 사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재)대한문화재연구원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 대규모 사역 가운데 극히 일부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법수사지의 새로운 전모를 밝히는 것은 물론 법수사지 사역의 정비와 보존ㆍ보호 방안에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발굴조사를 지속해나갈 계획이다.
이번 발굴조사 성과는 오는 27일 오전11시 발굴현장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더 자세한 사항은 (재)대한문화재연구원(박태홍 기획처장, ☎061-383-7188)으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