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뉴스] 친중국계 내부에서 몰래 반발 표가 나와 짱춘와가 혹시 당선되지나 않을까 하는 시민들의 기대는 결국 허무하게 사라졌다. 짱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야당의 300표에 약간 수를 더한 365표를 얻는 데 그쳤다.
선거 발표가 난 후 연설에서 짱춘와는 선거위원회 위원들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실망하거나 불만을 가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짱춘와는 지난 두 달간 선거 캠프에서 자신을 도와준 지지자들을 치하하면서 “내가 그동안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할 수 있게 원동력이 되어준 사람들이며,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힘”이라고 말했다.
짱은 선거 후 당분간의 활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으며 일단 휴식을 취하며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선거 막바지 여론 조사릍 통해 시민 대다수의 높은 지지를 얻은 짱이 행정장관이 되는 기적은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었다. 짱은 세 후보중 일반 시민 연설을 한 유일한 후보이다. 2014년 <우산 시위>가 발생했던 근처에서 있었던 일반 시민 연설에는 수천 명의 지지자들이 결집했었다.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짱은 시민들이 장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홍콩의 통합을 이뤄나가자”고 외쳤었다.
캐리 람처럼 행정부 공무원으로 수십 년을 근무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짱춘와의 지지기반은 야권이다. 애초 렁춘잉이 재임을 위해 선거에 뛰어들 것이라는 추측이 팽배했을 때는 친중국파들도 짱을 찍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한 사람이 많았었다. 이후 렁춘잉이 후보 재출마를 포기한다고 선언하고 캐리 람이 선수로 링에 오르면서 친중국계는 캐리 람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짱은 차선으로 밀려났다.
야권은 짱이 홍콩의 이익을 대변하고 중국 정부의 ‘간섭’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후보라며 지지를 약속했다. 실제로 선거기간 중 짱춘와는 시민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밑바닥 민심부터 살피며 정파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파의 이미지를 잘 각인시켜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짱은 학생시절 까울룽의 오래된 명문 La Salle College에서 수학했다. 10대 때 가족이 미국에 이민을 가면서 뉴욕으로 건너갔고 MIT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짱은 이때 대학에서 현재 부인을 만났다. 이후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행정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여기에서 도날드 짱을 만났는데 도날드 짱이 짱춘와에게 홍콩으로 돌아가 공직에 몸담으며 사회를 위해 일하라고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날드 짱은 2005년에 행정장관으로 당선됐다.
짱춘와는 세관의 국장으로 임명된 1999년부터 공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기사제휴=홍콩수요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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