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어제(12일) '북한인권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을 비난했다. "헌법에는 북한도 대한민국 영토라고 규정되어 있다. 북한주민도 엄연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헌법을 중시하여야 할 헌법기관인 인권위가 헌법을 무시하고 있다."(한나라당 대변인실). 비판의 요지는 북한주민도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 안에 있기 때문에" 북한 지역에서의 인권침해 행위 역시 국가인권위의 조사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매우 정치적인 성격의 공격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정치적 의도와 별도로, 한국사회당은 현행 헌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일면적 인식에 대해서도 경악과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한국사회당의 입장을 밝힌다.
1. 헌법 제3조는 물론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정하고 있고, 이에 따르자면 북한지역도 비록 대한민국 헌법의 실효적 지배를 받지는 못하지만 대한민국의 영토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헌법 제4조 평화통일조항은 무력통일을 헌법상 허용될 수 없는 것으로 못 박고 있으며, 이에 따르자면 북한은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제3조 영토조항은 오랫동안 북한을 주권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의 근거가 되었고, 국가보안법의 합헌성에 대한 주장은 으레 헌법상의 영토조항에 소급했다. 반면에 제4조 평화통일조항은 헌법 전문 및 1992년 2월 19일부터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와 함께 북한은 반국가단체가 아니라는 입장의 법적 근거로 거론되었다.
2. 헌법 제4조에서 말하는 통일이란 영토수복과는 달리 국가 간의 통일이며 상대방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동 조항은 북한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제3조와 충돌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때 영토조항 개폐론이 제기되었다. 지난 2005년 10월 24일 국회에서 정동영 전통일부장관의 발언이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에 등장했던 수많은 영토조항 존치론 중에서 여론의 향배를 좌우했던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여론의 관심을 끌던 상황에서 헌법 제3조를 폐기할 경우 북한은 국제법상의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북의 급변사태 시에 남의 개입근거가 사라진다는 반론이었다. 이에 보수적인 헌법학자 일부도 제3조를 통일 이후의 영토범위를 선언한 조항으로 보고 아울러 제4조는 통일의 방식을 밝힌 조항이라고 해석한다면 양 조항의 충돌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제3조에 대한 해석론상의 변화를 통해 제3조의 규범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사회당이 판단하기에, 설령 제3조와 같은 영토조항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제3조의 조문에 "통일 이후"라는 표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제3조는 설령 이 조항을 통일 이후의 영토에 관한 조항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설이 된다 할지라도 헌법재판소의 법해석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평화국가 원칙과 평화통일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제4조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헌법 제3조를 제4조에 대하여 우위에 둠으로써 제4조를 상대화하는 한나라당의 헌법관은 심지어 대법원(대판 2004. 7. 22. 2002도539 국가보안법위반)이나 헌법재판소(헌재결 1997. 1. 16. 92헌바6 국가보안법 위헌소원; 헌재결 1993. 7. 29. 92헌바48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제3조 위헌소원)의 입장과도 상충한다. 물론 사법부는 헌법 제3조를 통일 이후의 영토규정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은 대한민국 헌법의 실효적 지배를 가로막는 반국가단체로 간주되지만, 북한은 다른 한편으로는 헌법 제4조에 의거하여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규정된다. 이와 같은 '북한정권의 이중적 성격'에 의거하여 사법부는 한편으로 국가보안법도 합헌이며 다른 한편으로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도 합헌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지만 북한을 한편으로는 반국가단체로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로 보는 '북한정권의 이중성론'을 통하여 헌법 제3조와 제4조의 규범조화적 해석이 달성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북한정권의 이중성'은 단지 양 조항의 규범적 충돌과 긴장의 반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일관된 입장은 양 조항의 등가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헌법 제4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한나라당의 일면적인 헌법관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한나라당은 국가인권위원회를 "헌법을 무시하는 헌법기관"이라 비난하기 이전에 자신의 헌법관이 얼마나 일면적인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헌법 제3조만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면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난한다면, 이와 같은 비난은 북한지역을 실효지배하지 못하는 모든 국가기관에 귀속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정부가 북한지역에서도 조세를 거두어 들여야 한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으며, 결국 모든 국가기관에게 헌법 제4조에 반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헌법파괴적인 책동이 된다.
4. 반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헌법 제3조의 존재를 부인한 것이 아니라 단지 "헌법 제3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실효적 관할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북한지역에서의 인권침해행위나 차별행위는 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아울러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부인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의 보편성 원칙과 평화주의 원칙 등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네 가지 원칙을 정부에게 권고하고 있으며, 이에 입각하여 다섯 가지 구체적인 제언을 개진했다.
5. 이 나라의 극우세력은 마치 헌법 제3조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의 핵심인 양 떠든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체성의 핵심은 민주공화주의적 주권원리를 표현하는 헌법 제1조 및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말하고 있는 헌법 제4조일 것이다. 비록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인권과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 원리로 이해되는 대신에 천박한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하여 일체의 국가 개입을 배제하는 시장만능주의의 헌법적 보장으로 오해되더라도, 그런 모든 오해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단순한 영토국가가 아니라 엄연한 헌법국가인 한에서 대한민국 정체성의 핵심을 담고 있는 조항은 헌법 제3조가 아니라 오히려 헌법 제1조와 더불어 헌법 제4조라고 말해야 마땅하다. 영토조항이 다른 모든 조항에 대하여 우위를 가진다는 발상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헌법국가적 정체성에 반한다.
결론적으로, 한나라당의 국가인권위원회 비난에서 드러난 일면적 헌법관은 헌법에 대한 무지라기보다 북한주민의 인권상황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주민의 인권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국가인권위원회가 접근방법상의 원칙으로 제시하였듯이 "평화적인 방법"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처럼 영토조항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평화조항을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면 북한인권 상황의 "실질적 개선"에는 관심이 없고 북한인권 담론을 통한 국내정치적 효과만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 된다.
한국사회당은 지난 11일자 논평에서도 밝혔듯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의 보편성 원칙과 평화주의 원칙을 양립가능한 원칙으로 파악함으로써 인권개입전쟁을 부정한 점을 환영하며, 무엇보다도 "단지 북한당국의 실정을 폭로할 목적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극우파들은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방해하고 있는 세력" 이라고 한국사회당 최광은 대변인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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