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상품, 정선대리석 호영식 사장
대한민국 최상품, 정선대리석 호영식 사장
  • 대한뉴스
  • 승인 2006.01.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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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을 통한 새로운 가치창조에 매진"

세계적 찬사 '정선대리석', 2006년 대리석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역수출


어렵지만열정과 집념을 앞세워 남들이 선택하지 못한 분야를 선택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이가 있다. 이화여대 피아노 전공, 코오롱상사 숙녀복 디자인실 수석 디자이너, 대학교 강의, 의류사업 대표이사 등을 거쳐 현재, 정선대리석(www.jungsunmarble.com)의 대표를 맡고 있는 호영식 사장이 바로 그다. 한국을 넘어 세계를 향해 도전하고 있는 호영식 사장을 만나 국내에서 대리석을 생산하여 수출까지 할 수 있었던 동기와 원동력을 엿보았다.

◆ 대리석의 고정관념 깬, '정선대리석'

과거, 국내에서는 대리석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1월, 부산 동백섬의 누리마루에서 개최된 'APEC정상회의'때, 누리마루 APEC 하우스의 기둥과 바닥에 강원도 정선에서 캐낸 국산 대리석이 설치되어 한국의 저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대리석 생산의 불모지로 여겨왔던 우리나라에서 '대리석이 없다'는 인식을 깨기 위해 남보다 몇 배의 노력을 했던 정선대리석의 호영식 사장이 있었다.

1985 년 설립된 정선대리석은 호 사장의 아버지가 과거, 정선에서 대규모 탄좌(여러개의 탄광)를 운영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다. 호 사장의 아버지 호상철 회장은 1960년대, 강원도 정선의 10개 광구를 확보했는데 그 규모는 825만평으로 약 500년 동안 대리석을 캐낼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규모였다. 일제시대 때, 지질조사를 한 자료에 보면 이 땅에서 '보석 같은 돌이 나온다'는 기록을 발견, 광산을 매입했다고 한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대리석이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던 시기였다. 때문에 호 사장은 그 누구보다도 이 사업에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다.

정선대리석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실시한 품질시험에서 강도, 비중, 변질, 흡수율 등 최상품으로 판정될 정도로 그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대리석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이루어낸 쾌거라 할 수 있어 호 사장은 "최고급 시장인 두바이의 경우 왕실에서 우리 대리석을 쓰겠다는 주문이 들어왔다"며 품질 뛰어난 국산 대리석이 때맞춰 호황기를 누리기 시작한 경유를 설명했다.

이제는 정선대리석이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멋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이태리산 대리석이 최고로만 여겨진다는 고정관념을 일축해 버리고 만 것이다.

◆ 생활에 접목시킨 제품 개발위해 노력

IMF 당시 국내 대리석시장은 이태리에서 좋지 않은 대리석을 고가로 수입해오다 IMF가 끝나고 나서는 값싼 중국산 대리석이나 동남아산이 국내 시장을 많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호영식 사장은 지난 20년 동안 국산대리석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고 보급하는데 노력하여 현재는 '정선 아라리 대리석'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에서 대리석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도 힘들었던 가운데 대리석으로 장식용 화병을 만들었던 당시, 대리석이 건축용자재로 사용된다는 것은 결코 상상할 수도 없었다. 호 사장은 오히려 대리석으로 화병을 깎기 보다는 건설용 자재로 접목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는 채석기계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건축자재로 사용하는데 성공하였다.

한국의 얼이 담긴 정선대리석은 이후, 지하철 5호선 매표소 창구를 필두로 서울 월드컵 상암 경기장 VIP홀, 김포공항 제1청사, 광화문 지하보도, 상하이 한국총영사관 등 각종 공공시설에 채택되어 빛을 발하기 시작, 고급 주거단지와 사무실 등에도 100% 국산, 정선대리석이 설치됨으로 그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색감과 무늬가 강렬한 정선대리석은 그야말로 한국의 혼이 서려있다고 볼 수 있다. 정선대리석을 처음 본 사람들은 오히려 '이태리산 고급 대리석이 아니냐'하는 반문을 일으켰을 정도였다. 이렇듯, 정선대리석의 특징은 한 색상이 다양하고 무늬가 수려해 동양의 신비함과 우아함 그리고 고귀함이 녹아있다고 할 수 있어 세계의 어떤 돌도 이러한 느낌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인체에 유익한 알카리성 성분으로 세계에서 제일 좋다는 춘천옥과 같은 성분의 원료로 원적외선의 방출효과를 통해 건강에도 아주 좋은 '氣'돌이라 불린다.

호 사장은 대리석이 고가의 품목이라는 이미지를 탈피시키고 보다 많은 일반인들이 대리석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해 알도록 조명기구나 기타 생활에 접목시킨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그는 삼성전자와 함께 대리석 패널을 붙인 '냉장고'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와 같은 성과는 피아니스트로 패션디자이너를 통해 습득한 '창조력'이 대리석을 다양하게 접목시킨 제품을 탄생시키는데 톡톡히 한 몫을 한 것 같아 보인다.

한편, 대리석을 접목시킨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날마다 구상한다는 호 사장은 우리나라의 환경이나 장비, 마케팅, 시장의 흐름 등 아직 여건이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 인내를 얻었고, 넓은 안목을 얻었다

피아니스트, 패션디자이너, 대학 교수 등 다양한 이력사항을 지닌 호 사장은 어렸을 때부터 배운 피아노를 통해 '인내'를 얻었고, 디자이너 경력을 통해 '세계의 흐름을 읽는 넓은 안목'을 얻었다고 말한다.

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아버지의 사업이 크게 부도났던 때를 기억하며 자신감을 세운다"는 그는 어려웠던 시기를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기억하며 "삶의 거름이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인생에 있어서 물질이 영원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호 사장은 "지금 물질을 영원히 갖고 있겠다고 생각했다면 아마 '정선대리석'사업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가치 있는 사업을 해 보고 싶다'는 속마음을 언뜻 내보이는 호 사장은 모든 것을 내걸고 이 사업에 임했지만 판로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게다가 3D업종에 속하는 직업의 특성상, 사람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터. 특히, 그동안 관공서급 일을 많이 진행해온 터라 전례가 없던 이 사업을 행정공무원들에게 인식시키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힘들고 어려운 관문이었다. 게다가 '이태리대리석'이 최고로만 여겨져 왔던 국내의 상황은 호 사장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고 국내에서 생산되는 '정선대리석'은 그저 평범한 돌에 불과한 것처럼 취급됐으니 그의 맘은 더 닳고 닳았을 것이다.

호 사장은 직접 설계사무소와 관공서를 발로 찾아다니며 판로를 개척하기 시작, 남들이 하나 알아주지 못했던 시절, 대리석 하나만을 위해 긴 세월을 싸웠다. 그 결과, 이제는 대리석의 불모지였던 한국이 세계 시장에 발을 뻗는 시기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 가치를 알고 사랑받을 수 있는 곳에 대리석을

"어렵고 희생을 따르는 일이었기에 이 일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단순히 돈을 벌려고 했다면 아마 이 사업에서 손을 뗐을 거예요"

무엇보다 없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가장 고통스러웠을 터,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시작한 사업이기에 호 사장은 더욱 많은 희생을 담보로 해야 했을 것이다. 그는 사업에 대한 가치와 자존심 내세운 경영을 통해 '대리석'하나만을 위해 20년 외길을 걸었다. 자신만의 특별한 경영신념으로 사업을 이끌어 온 그는 판로를 찾기로 힘들었던 때, 누군가 대리석을 사겠다고 나서면 아무에게나 다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꼼꼼히 따져본 후에야 판매를 결정했다. 오히려 구매자의 입장에서 까다로워야 할 부분인데 판매자인 호 사장은 구매자보다 더 세심하기로 유명했다. 때문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그의 손을 타고 나면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한국의 얼과 전통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됐다.

"정선대리석이 어느 곳에 접목되느냐에 따라 그 가치 또한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대리석 한 장을 붙이더라도 우리나라의 전통을 이어받은 정선대리석의 가치를 알고 사랑받을 수 있는 곳에 설치하고 싶어요"

그의 이 같은 경영방침은 근시안적인 사업성공보다는 국내를 벗어나 세계적으로 정선대리석의 놀라운 가치를 알리기 위한 세계시장 진출의 초석이 되어 2006년 대리석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이태리'로 역수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 일이냐?, 가정이냐?

호 사장은 직원들에게도 자신의 특별한 경영철학을 강조한다. 특히, 여직원들에게는 '남보다 앞선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입장은 아직은 가정과 일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그 또한 선택의 기로에서 일을 선택했기 때문.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남보다 몇 배나 더한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호 사장은 여직원들에게 보다 열정적인 인물이 되어 일과 가정에서 둘 다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강조한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부모가 애쓰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부모가 살아온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저희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시고 당신들의 사시는 모습을 무언(無言)으로 보여 주셨어요"

호 사장은 자녀를 키우는데 있어서도 특별했다. "저는 아이에게 목표만 세워주었어요. 물론 저 또한 아이와 약속하면서 저의 목표를 이야기 했죠.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한 선택은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었어요" 호 사장은 자녀 양육법에 있어 아이에게 목표를 제시해 주고 그 안에 자율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토록 그 장을 열어두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강조하는 호 사장은 현재, 슬하에 외동딸 1명을 두고 있다. 미국 로스쿨에 재학 중인 그의 딸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막바지 준비작업에 한창이라고 한다.

연말이면 호 사장의 가족들은 특별한 모임을 갖는다. 가족식구 모두는 집이 아닌 다른 장소를 선택해 그 곳에서 한 해를 뒤돌아보며 1년간의 성과를 이야기한다.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한 해의 계획을 점검해 봄은 물론 가족들과 한 약속이기에 '꼭 지켜야 하리라'하는 마음 속 깊은 다짐을 하게 되며 더불어 이를 통해 가족간의 화목을 다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고 한다.

돌(?) 사장이라 불릴 정도로 대리석에 대한 애착이 무척이나 강해 이제는 '사명감'이 되어버린 사업. 힘들 때마다 '대리석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는 그의 말 속에 지난 20년의 세월이 녹아난다. "한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다 스토리가 담겨 있어요"라고 말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호 사장의 목표는 이제 세계로의 진출이다. 한정된 국산시장 보다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세계인들이 놀랄만한 한국의 저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올 2006년, 대리석의 원산지라 할 수 있는 이태리 역수출을 통해 세계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 그의 앞에 이제 남은 것은 열심히 뛸 세계무대다. 깎아내면 깎아낼수록 새로운 무늬가 거듭 나오는 대리석처럼 그의 사업도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을 통해 무르익어가고 있다. 식을 줄 모르는 열정 탓에 점 점 더 젊어져만 가는 호영식 사장을 통해 세계 속, '코리아파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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