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전통 청동주조기법 배우는 사람 없는 게 안타까워
천년 전통 청동주조기법 배우는 사람 없는 게 안타까워
청동주조 명장 천종사 송창일 대표
  • 대한뉴스
  • 승인 2010.09.0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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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작업 하고 싶어도 공장 늘릴 수 없어 아쉬움

‘통일의 종’‘춘천시민의 종’ 등 종 작품만 수백개

“청동박물관(청동불상,청동탱화) 건립이 꿈, 경험·작품 모아 책 펴낼 것”


인간이 청동주조를 시작한 것은 상당히 오래됐다. 다른 나라의 역사는 접어두더라도 신라시대 때의 에밀레종은 만들어진지 1,20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깨지거나 금이 가지 않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준다.


인간이 금속 중에서 가장 먼저 개발한 것이 청동이라고 한다. 그렇게 개발된 청동주조기법은 신라시대에 이르러 최고도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 뛰어난 기술의 흔적은 에밀레종이라는 위대한 종의 탄생으로 천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뛰어난 우리나라의 청동주조기술은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비법이 전수되지 않고 있다. 다만 청동주조분야는 지금까지 간신히 명맥만 유지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히 올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청동주 분야에 천종사 송창일대표를 명장으로 선정했다. 송 명장은 청동주 경력이 올해로 40년째다. 이에 본지는 송창일 명장(사진 下)을 찾아 청동주 전반에 대 얘기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Q 올해 명장으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소감부터 간단히 말씀해 주신다면?


A 명장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 당시 나는 홍법사 청동대불건립 일로 부산에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신문보도를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알려주었다. 기쁘긴 하지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Q 현재 우리나라 실태는?

A 청동주조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급신장하면서 몇몇 사람들이 중국으로 건너갔지만 부실한 공사로 인해 진출에 실패했다.


또한 올림픽도 끝나면서 중국의 임금이 많이 상승해서 여건도 좋지 않고. 경쟁도 심하다. 지난해에도 대불 건립건이 있었는데 수주를 중국에 빼앗긴 적도 있다. 나의 경우는 주물과 조각도 할 수 있어 청동주조를 하는데 유리하다. 주물과 조각을 같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Q 청동주조 외에도 여러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A 청동주조는 물론 조각도 하고, 단청작업, 탱화도 그린다. 문화재 보수도 하고 있지만 바빠서 돌볼 틈이 없다. 적어도 문화재 재·보수 차원에서 청동주조 분야에는 명장이나 기능장 정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Q 그렇다면 명장 신청은 몇 번째인가?

A 두번째다. 첫 번째는 너무 성의가 없었던지 낙선했다. 그래서 준비를 철저히 했다. 20년이상 종사한 사람들 중에서 선정하는데 나의 경우 올해로 40년째다. 명장에 대한 얘기는 우연히 들었다.


원래 광주(경기도)는 도자기가 유명하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도자기에만 관심을 둔다. 하지만 다른 기능분야도 상당한 실력자들이 많다. 광주시에서도 도자기에만 신경을 쓰지 말고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Q 어렸을 때 할머니를 따라 능가사라는 절에 갔었다는 데 사천왕상을 보고 무엇을 느꼈나?


A 능가사의 기둥은 싸리나무 기둥이었다. 어른 팔로도 세아람 정도 될 정도로 컸는데, 초등학교 때 할머니를 따라 능가사에 갔을 때 대부분 무서워했지만 내겐 사천왕상이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때 할머니 말씀이 “커서 스님이 될 거다”고 하셨는데 스님은 못되고 청동주조 일을 하게 됐다.


Q 학력이 중졸인데 어떻게 홍익대 최기원교수와 만났나?


A 외사촌 형이 소개해 줘서 주물계통 업체에 있었는데 그때 알게 됐다. 주물공장에는 오래 있었고 나중에 책임자가 되면서 많은 일을 했다. 조각실에서 살다시피 했고 주물도 많이 하면서 최교수님과 인연을 맺게 됐다.


최교수님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스승과 같은 분이시다. 그분 작품도 많이 만들었다. 최근 작품으로 부산 김해경마장 마상(馬像)을 청동으로 주조한 것이 4년전 일이다.


Q 불교미술전에서 대단한 성적을 거뒀고, 특히 스티로폼과 핀셋을 이용한 획기적 조각법도 개발했다는데 어떤 것인가?


A 1982년 제10회 불교미술전람회에서 조각부 특선을 한 후 불미전을 통해 3회에 걸쳐 입선과 특선을 하는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2009년도에는 제15회 대한민국 청소년 민족문화예술대전 불교조형미술 대상 (통일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예전에 불교작품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흙이나 석고로 주조했는데, 날이 갈수록 작품이 대형화되어가고 있어 그 방법으로는. 흙이나 석고가 여러번 과정을 거치는 동안 말라 버려 원형이 훼손돼 작업에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스티로폼이다. 스티로폼은 변형이 거의 안되니까 작업이 한결 수월하다.


게다가 아무리 오래둬도 변형이 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개발한 획기적인 조각법과 주조기술을 인정받아 2009년 제14회 신지식인 협회장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Q 불교미술은 우리나라 미술의 꽃이다. 그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것 중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A 현재 제작하고 있는 부산 홍법사 대불(大佛)이다. 높이 26m로 작년 초부터 작업을 시작해 9월 25일이면 작업이 끝날 예정이다. 종은 그동안 수백개를 제조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DMZ 철책 안에 있는 천관짜리 ‘통일의 종(아미타종)’과 ‘춘천 시민의 종’이다.


강원대 기계공학부 김석현교수가 측정한 자료에 따르면 ‘춘천시민의 종’은 맥놀이 현상으로 소리가 4분20초나 간다. 통일의 종은 DMZ안에서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해서 만들었는데 이 종이 설치되고 난후 사고가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한다.


기존의 탱화들은 그림채색, 목재 등의 방법으로 제작되었지만 내가 청동으로 주조, 채색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시도해 탱화의 새로운 장르를 열기도 했다.


부산 폭포사 청동후불탱화, 공주갑사 대자암 청동 후불탱화, 정읍 미륵암 청동후불탱화가 그 대표적 작품이다. 이밖에 현재 상주 연수암에 104위 신중탱화와 후불탱화, 칠성탱화를 조성중이다.


Q 이 일을 해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는지?


A 그동안 실패도 많이 했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질시의 말도 많이 들었다. 청동주조에 대해 잘 모르면서 말들은 왜 그리 많은지 그게 문제인 것 같다. 지금은 그런 것을 뛰어 넘어 모든 것이 새로운 발전을 위한 교훈이라 생각한다. 주물의 과정은 실제로 매우 어렵다.


전에는 잘 모르고 했었는데 범종을 만든다든가 주문 작품이 대형화되어 가다 보니까 주물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주물은 이태리 주물을 제일로 친다. 상당히 정교해서 머리카락까지 주물로 뽑을 수 있을 정도다.


여담이지만, 20년전 일본에서 15자 규모 반가사유상 모조품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500여점의 반가사유상 모조품을 만들어 수출한 적이 있다. 그때 일본사람이 내게 와서 ‘이런 일을 하는데 정부에서 지원해 주나?’고 물은 적이 있다. ‘없다’고 했더니 굉장히 놀라더라.

Q 명장선정 기준에 불우 이웃 등 사회단체 활동 항목도 있던데?


A 사실 그동안 요양병원(불교계통), 사회단체 등에 기부를 해 왔는데 이름이 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숨겼다. 하지만 명장심사에서 필요한 첨부서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분들께 가서 도장을 받아왔다.


내가 이 일로 돈을 조금 모았지만 이 모든 것은 불교와 관련된 일에서 비롯됐고, 그것으로 꽃을 피웠으니 다시 불교로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Q 향후 계획이 있다면?


A 개인적으로 청동박물관을 건립했으면 하는 꿈이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일해오면서 느낀 여러 가지 기술, 노하우, 작품 등을 모아 책으로 엮었으면 한다.


이와 비슷한 무형문화재의 경우는 전수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명장들도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고 뛰어난 기능도 있다. 그러기에 명장 칭호를 부여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뒤를 이을 사람이 없는 게 가장 아쉽다. 직원도 몇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 가족들이다. 따라서 후진 양성을 위해 전수관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경우 청동주조는 오래도록 함께 해온 탓에 애착이 강하다. 천직이라는 생각도 했고 자부심도 있고, 수많은 작품도 냈다.


현재 불교예술작품과 관련해 대전방송에서 5부작 다큐멘터리 촬영도 진행하고 있는데, 사실 불교작품은 청동 말고도 나무나 종이, 철, 석물 등 재료가 많다. 다른 불교작품 분야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청동만큼은 옛 백제시대 기술을 재현할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청동주물은 청동불(佛)이나 청동종(鐘) 모두 동양권에서 번성한 종목이다. 우리나라 청동주조물은 특히 미적인 감각이 뛰어나다. 석굴암의 불상은 그 어느나라 작품보다 자비스럽고 친근감이 든다.


또한 에밀레종의 종소리는 소리가 깊고 널리 퍼지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금을 울린다. 이처럼 좋은 제조기술이 전수되지 못하고 그냥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권혁빈 황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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