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무역수지 흑자 1.7억불 시현 후 지난 해 수출 14.5억불, 수입 1.4억불, 무역흑자 13.1억불을 이루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금형산업은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인 수출 16억불, 무역흑자 14.5억불을 이뤘다.
이처럼 금형산업을 일약하고 제 2의 르네상스 풍조를 일으키는데 공로한 (주)건우정공(대표 박순황/右사진) 박 대표는 금형의 날 행사에서 온화한 미소로 가장 빛났다. 3D산업이라 여겨졌던 금형산업을 '국내 기반산업의 첨병' 탈바꿈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박순황 대표, 금형산업의 틀을 짓다
(주)건우정공은 금형산업계에 알토란같은 기업이다. 기반 산업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오던 금형기술을 산업의 꽃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화제의 인물은 다름 아닌 (주)건우정공의 박순황 대표.
1968년, 금형산업에 첫 발을 딛게 된 박 대표는 노력 끝에 JY솔루텍의 전무를 역임한다. 이어 JY솔루텍의 자회사, 재형검정정공으로 금형산업의 틀을 짓고, 3년 후 '90년 10월 오늘의 (주)건우정공의 이름으로 금형산업의 새 역사를 쓴다.
금형이란 규격이 동일한 제품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금속재료를 사용해 만든 ‘틀’로 자동차, 휴대폰, 전기전자 제품은 물론 각종 산업기계,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데 활용된다. 고무, 알루미늄, 아연, 플라스틱, 유리 등을 성형해 양산하는 금형은 일반 상품과 달리 주문자의 요구사항에 정확하고도 정해진 시한 내에 제작돼야 하는 주문자 상품이다.
반도체, 가전, 자동차 등 모든 완성품의 품질은 곧 금형의 정밀도에 좌우되는 뿌리 산업- 금형은 전두환 대통령 시대부터 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세계 유일의 금형학과를 개설했고, 외국 우수 엔지니어들로 부터 교육을 전수받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했다.
당시 한일산업연수생 1기 박 대표 또한 일본으로 건너가 앞선 금형산업의 기술을 전수받았다. 일본과의 파트너십은 이때부터 이미 예상됐다.
"외환위기? 오히려 저에겐 전화위복이 됐죠."
국내 대기업에 노트북, VCR 등을 납품하며 순조롭게 항로를 운항 중이던 (주)건우정공이었지만, 외환위기는 대기업의 ‘납품비 20% 인하'와 부딪쳐 그만 좌초되고 만다. 환율 급등은 수입재와 재료비의 상승으로 이어졌고 대기업과 접점을 찾지 못하자, 해외 시장으로 돌파구를 마련한다.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삼은 건우정공은 일본의 유수기업들과 손잡는다. 특히, 일본 수출분은 이미 1년 전에 사전 계약되는 장점이 있어 국내 대기업의 단기 사전 계약에 비해 훨씬 유리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주)건우정공의 주요 거래처는 일본 후지스(FUJISU), 엡손(EPSON), 닛산(NISSAN), 파나소닉( PANASONIC), 덴소(DENSO), 시에멘스(SIEMENS) 등 일본 굴지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 발 앞서 유럽시장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세계 유수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유지해 오던 어느 날, 납품 견적을 잘못 내 큰 손해를 보게 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니치에이 사장은 "사업은 이익이 나야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다."며 오히려 20~30만 엔을 더 올려 줬다고 한다. 파트너십을 가장 우선시 했던 니치에이 사장의 선견지명은 현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의 파트너십을 기약한 필연적 인연으로 발돋움했다.
기술 개발과 보존에 따른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일본이 산업의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기업의 오랜 역사다. 제약회사를 비롯한 섬유, 음식 등 다수의 분야에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장수기업들이 현재 일본 경제를 잡고 있다.
오랜 역사를 이어온 기업들은 세대와 세대가 소통했고, 이는 박 대표에게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현재 박 대표의 카리스마는 차남 박용준씨에게 전수되고 있다.
밑바닥부터 혹독하게 배워왔던 박 대표는 현장에선 엄격한 감독관이자 대표이다.
"부주의는 생명과 연결되는 큰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며 평정심을 잃지 않는 박 대표지만 현장을 벗어나면 온화한 아버지에 다정한 대표가 되어 직원들을 위로하고 집으로 초대해 고기에 소주한잔을 따라 줄 수 있는 내유외강형이다.
해외 출장길도 함께 올라 바이어를 접대하는 방법과 기술 교육받고, 돌아와선 많은 업무를 척척 해내고 있는 박용준씨는 박 대표의 젊은 시절과 똑같다.
이런 그의 마음을 읽은 니치에이 사장은 박 대표의 아들을 일본으로 초대해 2세대 간의 친분을 돈독히 하며 다음 세대까지 파트너십을 이어가자며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인재는 자산이자 미래의 원동력'
“금형산업은 1mm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제품을 요하는 산업”이기에 현장은 최소 5년 이상의 기술자를 요하고, 작업 공정은 온 열정을 쏟고 혼을 불어넣어야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로 한다. 독일의 마이스트 제도는 이론교육과 실습교육을 병행해 준비된 인재를 양성한다. 이에 우리나라는 주입식 이론교육을 벗어나 현장 실습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박 대표는 일침을 가했다.
현장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땀과 눈물이 얼룩져 있던 지난 20년, 직원들의 신뢰와 믿음만이 오늘의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박 대표는 직원들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또한, '기업의 발전은 우수한 인재가 이끌어간다'고 철석같이 믿는 박 대표는 금형산업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는 고객의 요구사항과 급변하는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 최상의 서비스를 지향하고 기술자들의 신기술 개발은 급격히 성장하는 중국 시장과 원자재 가격의 급등과 환율의 불안정을 극복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 박 대표의 견해다.
3D산업에서 기반 산업의 꽃이 되기까지
백지와 같던 산업 전반에 먹과 붓의 역할을 해왔던 금형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형산업은 3D산업'이란 인식을 면치 못한다.
박 대표는 독일의 경우, 모니터를 통해 압력센서를 파악해 현장을 관리한다며 "IT산업과 접목해 기술 개발에 앞장 서야 한다."고 미래 금형산업의 포부를 밝혔다.
'틀이 세상을 바꾸고 틀 속에 미래가 있다'는 말처럼 금형산업의 작은 틀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기술 경쟁력과 노하우를 확보해 글로벌 경영의 핵심 주력산업으로 야심차게 나아가야 한다고 박 대표는 토로한다.
또한, 산업과 수요자의 무한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선진국의 기술을 배워 국내 관련 기업들과 공유하고, 정부는 IT산업의 인프라 구축과 해외 거점 A/S센터를 구축하는 등 환경과 생산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황량했던 금형산업의 외길을 걸으며 세계 속의 치열한 경쟁 결과 , 금형산업 세계 5위를 이룩했다.
눈부신 성장과 발 빠른 기술진보를 통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고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끝이 없다고 박 대표는 굳게 믿고 있다.
앞으로 마케팅 브랜드 전략과 기술혁신을 통한 글로벌 시장경쟁력 높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통한 미래성장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건우정공의 힘찬 행보를 주목해 본다.
서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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