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개>는 관객들의 호불호가 분명한 영화다. 영화적 상상력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장면의 나열과 유기적이지 못한 스토리 전개가 서걱거린다는 악평부터 각 에피소드들 간의 상징적인 의미와 남북 대치 상황을 두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버무려 블랙코미디로 표현한 그의 작품성을 극찬하는 호평까지 관객들의 호불호를 정리해 펼쳐본다. 판단은 스크린 앞에 앉은 여러분의 몫이다.
남북 분단의 불편한 진실을 꼬집는 <풍산개>
<풍산개>는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산가족의 편지나 유품을 전달하는 비현실적인 인물 ‘풍산(윤계상)’을 통해 남과 북의 대치 현실을 꼬집는다. 극 중에서 ‘풍산’은 비명 외엔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풍산이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자 혹은 이념에 구애받지 않은 한 명의 ‘인간’으로 비춰지길 원했던 김기덕 감독의 전략적인 설정인 셈이다.
ⓒ김기덕필름
‘풍산’은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주고, 그들과 아픔을 공유하는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망명한 북한 고위층 간부의 여자를 ‘배달’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 ‘풍산’은 망명한 고위층 간부의 애인인 ‘인옥’을 평양에서 서울까지 ‘배달’하는 데 성공한다.
<풍산개>가 단순 로맨스 영화였다면 평양에서 서울까지 여자를 운반하는 과정을 세세하고 내밀하게 표현해 한 편의 드라마로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풍산개> 속에서 ‘풍산’과 ‘인옥’의 사랑은 남북 분단 현실 속에 숨어있는 불편한 진실을 꼬집도록 유인하는 ‘유인책’으로 기능하기에 그리 큰 시간을 할애 받지 못한다. 앞으로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영화 <풍산개>는 관객을 충분히 설득시키지 못한다. 비록 ‘풍산’과 ‘인옥’의 사랑이 영화의 주제를 말하기 위해 설정된 ‘도구’라 할지라도 그들의 사랑에 관객들이 공감할 수 없다면 줄거리 전개에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남한으로 망명한 애인을 만나기 위해 목숨까지 건 여인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이유만으로 ‘풍산’에게 사랑의 감정이 싹텄다는 것과 3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풍산’이 여인에게 목숨을 걸만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관객에게 큰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두 남녀가 평양에서 서울까지 오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이 싹튼 계기를 보다 설득력 있게 그렸다면 <풍산개>는 보다 많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김기덕필름
걸리버의 한국 여행기
<풍산개> 속에는 각기 다른 이념 속에 파생된 세 가지 형태의 희생자가 등장한다. 먼저 남북분단과 함께 생이별을 겪게 된 이산가족과,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풍산. 그리고 각기 다른 체제 속에 싸움을 반복하는 남북의 요원들은 영화 속에서 모두 희생자로 표현된다.
‘풍산’은 중립자의 역할로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을 낙으로 일상을 보내지만 두 이념의 싸움 속에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두 체제 집단에 악을 품게 된다.
북한 간첩단은 ‘천민 자본주의’를 멸시하지만 죽은 ‘인옥’의 내장을 파헤쳐 보석을 꺼내 여흥을 즐길 정도로 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다. 그런데도 밀실에서 남한의 요원을 마주하게 되자 여지없이 총을 겨눈다. 북한 간첩단이 남한의 요원들과 대립하는 이유가 더 이상 이념 때문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풍산’은 밀실 속에 남한의 요원과 북한 간첩단을 한 명씩 밀어 넣으며 싸움을 조장하고, 밀실 너머에서 그 장면을 방관한다. 외부 세력에 의한 다툼이란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부질없이 싸우는 남과 북의 모습이 현실과 오버랩 되어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품게 하는 장면이다.
<풍산개>는 한 남자의 복수를 통해 남한과 북한의 분단 현실과 그 속에 자리한 불편한 진실을 꼬집는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걸리버 여행기’의 에피소드 하나. 소인국인 릴리퍼트에서는 70년간 당파싸움이 지속되고 있었다. ‘높은 굽’의 트라멕산 당과 ‘낮은 굽’의 슬라멕산 당은 임금이 높은 굽의 신발을 신어야 맞는지, 낮은 굽의 신발을 신어야 맞는 지를 두고 긴 시간동안 당파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걸리버는 싸움을 그만둘 방법이 없냐고 물었고, 소인국의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은 우리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입니다. 어느 누가 옳고 그른지는 소용이 없지요”
<풍산개>는 남한 요원들과 북한 간첩단의 밀실 싸움 장면을 통해 위에 소개한 ‘걸리버 여행기’의 에피소드와 같은 시사점을 내놓는다. 처음엔 이념이 달라서 시작한 싸움이 이제는 왜 싸우는 지도 모르는 채 무조건 서로를 적으로 두고 있지 않은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 <풍산개>. 민감한 주제를 우회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스크린에 앉은 당신의 몫이다.
전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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