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업부흥의 진원지는 대우그룹이었다.
영화산업부흥의 진원지는 대우그룹이었다.
  • 대한뉴스
  • 승인 2012.09.0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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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영화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영화를 무색하게 만들고 웬만하면 400만명이상의

혹은 최근의 ¡°도둑들¡± 같이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바야흐로 도래되었음을 알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60년대 70년대 과거 영화라면 영화제작자가 재산을 통틀어 건곤일척의 투자를 하는게 관례였고 그러다 보니 열악한 자금규모로 우수한 영상과 스토리를 만드는게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많은 자본력을 앞세운 할리우드영화에 한국영화는 항상 유치하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영화제작이라면 으레 망하는 일종의 도박산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한국영화산업의 돌파구를 열고 현재의 부흥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 바로 대우그룹이었다고 전 대우그룹마지막구조조정본부장을 지낸 김우일 대우M&A 대표는 말하고 있다.


김우일 전 본부장은 76년 대우그룹기획조정실에 입사하여 2001년 그룹붕괴시까지 구조조정본부장으로 구조조정을 전담했던 대우그룹의 산증인이다.


김본부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영화산업에서 처음 영화제작자본의 산업화의 효시가 바로 대우그룹의 모회사인 대우실업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80년도 초 대우그룹은 영상사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전담할 별도의 본부를 대우실업의 영상사업본부로 설치하고 그룹기획조정실의 주관하에획기적인 사업발상으로 진척해나갔다.


첫째, 당시 할리우드 영화를 수입하여 자체적인 노하우를 배우고자 콜럼비아 배급사 대리권을 따내 전문직원들이 할리우드에 상주 작품성있는 영화를 선정 수입하여 영화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 둘째, 국산영화제작자본형성에 항상 추춧돌을 깔았다.

당시 영화제작은 약 20억원대 였는데 우선 대우그룹이 제작비 5억원을 대면 나머지 자금이 쉽게 모아졌다. 대기자금들이 대우그룹의 주도적인 제작참여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던 것이다.

꽃잎, 마누라죽이기, 은행나무침대, 강원도의 힘, 친구, 여고괴담등 150여편의 영화들이 만들어져 좋은 흥행을 거둔 것은 향후 영화산업의 보라빛이었다.

당시 영화산업은 영화제작자가 할 산업이지 건설, 중공업, 전자등 제조의 일반대기업들이 눈돌리지 않는 산업으로 치부되어 어느 기업이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런상황에 처음 시도한 대우그룹의 영화제작자본의 산업화는 현재의 다른 대기업들의 영화산업참여를 이끌어냈고 영화부흥의 시금석이 되었던 점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정리 /이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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