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개혁세력 사회원로들은 19일(월) 오전 10시 30분 여의도 렉싱턴 호텔 2층 소연회실에서 민주개혁세력의 패배주의 극복과 후보단일화 촉구 사회원로 기자회견을 가젔다.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이제 꼭 한 달 남았다. 지금 형세는 안 좋다. 그간 힘들게 추진해온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평화정착 과정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매도하며 역사를 퇴행시키려는 세력이 기세등등한 반면, 민주개혁을 주도해온 사람들은 자신의 대오조차 정비하지 못한 채 패배의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해당 후보들의 지지도가 낮게 나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민주개혁세력 스스로가 패배주의에 젖어 여론을 반전시킬 열정과 헌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어느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려는 것이다. 민주한국 20년의 빛나는 역사를 주도해온 개혁세력이 단합된 힘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맥없이 무너지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커다란 비극임을 강조할 따름이다. 아니,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승자에게도 결코 도움이 안 되는 사태임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라 말했다.
더구나 이번 대선은 그 어느 선거 못지않게 중요한 우리 현대사의 갈림길이다. 지금 한반도는 몇 세기만에 처음 있는 대약진의 기회를 맞았다. 미국이 북한과의 기나긴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었고, 일본도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협조하는 노선을 선택했다. 남북간에는 지난 10월의 정상회담에 이어 바로 지난주의 1차 총리회담이 수많은 구체적 실행계획에 합의하는 등, 남북의 화해와 협력, 공동번영의 길이 활짝 열리고 있다. 그에 비해 국내정세는 온갖 비리와 의혹이 잇달아 터지면서 극히 어수선한 상태다. 이 또한 구시대의 온갖 폐습과 부당한 기득권들을 덮어두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을 증언하고 있다.
이런 희망찬 변화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민주개혁과 한반도의 평화번영을 표방하는 대선 후보들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정치지형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서로간의 비판과 공격에 더 많은 힘을 쏟기도 한다. 물론 각 후보가 자신의 선명한 입장을 드러내고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내는 작업이 선거공간의 중요한 기능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순수한 학술토론이 아니고 현실정치의 공론이라면 대선 30일 전에 할 이야기와 석 달 전에 할 이야기가 다르고, 1~2년 전에 할 일과 대선 직후에 새로 시작할 일이 달라야 한다. 지금은 민주개혁세력 내부의 가치논쟁에 몰두하기보다 공통의 가치를 중심으로 단결하는 모습을 통해 국민들을 감동시킬 때인 것이다.
실제로 가치의 차원에서도, 대통령 후보의 준법정신과 정직성에 무관심하고 대기업과 부유층에 편중된 ‘경제 살리기’를 추구하는 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세력 사이의 차이보다 더 선명한 가치대립이 어디 있을까. 그동안 시민사회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부패척결에 나설 의욕과 자격이 있고, 경제의 성장동력을 확보하되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비정규직 양산 등 사회양극화 현실에 맞서고자 하며, 바야흐로 무르익은 한반도 평화번영의 기회를 십분 활용할 열정을 품은 후보라면 그 누가 당선되어도 우리 역사의 또 한 차례 큰 전진이 될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전진을 위해 지금은 뜻있는 모든 사람들이 단합할 때이다. 그리고 당장의 현실적 과제는 후보단일화다. 가치의 밑받침이 없는 ‘정치공학’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과거회귀세력과의 가치차이가 명백한 상황에서, 더구나 대선이 한달밖에 안 남은 시점에는, 정교하고 효율적인 정치공학을 통해 최대한의 세력연합을 달성하는 것이 민주개혁세력이 역사 앞에 책임져야 할 임무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정치인들이 찾아낼 일이다. 합당을 하든 선거연합을 하든, 그리고 후보단일화의 절차를 어떤 식으로 하든, 우리는 현실정치의 일꾼들에게 맡기고자 합니다. 방법이야 어찌 되든 지역기반을 지닌 정당은 지역기반을 보태고, 원내 의석을 가진 정당들은 의원들의 힘을 보태며, 참신한 정책구상과 인력을 자랑하는 집단은 정책과 인력의 참신성을 보태고, 독자적인 민중조직을 지닌 집단 역시 대선승리에 이를 보태는 방도를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든 자신이 가진 작은 이점에 집착하여 대사를 그르치지 말아야 하며, 패배주의에 젖어 차후의 실리를 챙기겠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도리어 실리마저 잃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할 것이다.
민주개혁세력에 대한 여론의 냉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온갖 좋은 말을 하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한 대오정비조차 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냉소가 크게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애당초 그 좋은 말들이 대선 이후의 작은 이득을 챙기려는 당리당략에 불과하다는 의심도 없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패배주의에 젖어 미리부터 안 되는 이유나 분석하고 있는 정당과 세력들에 감동해서 그들을 패배로부터 건져줄 국민은 없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는 아직껏 상식과 몰상식의 대립구도가 유효한지도 모른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사회악과 냉전적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한국의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많은 이들이 열정적으로 헌신해왔고 이만큼이나마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우리는 절감한다. 지금이야말로 민주개혁세력이 한번 더 분발하여 상식의 지배영역이 넓어지는 미래를 확정지을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명감을 지닌 정치인과 시민들 모두가 패배주의를 떨쳐버리고 후보단일화를 실현할 것을 촉구한다고 민주개혁세력 사회원로들은 말했다.
서명자 일동(가나다순)
고은(시인), 곽배희(한국가정법률삼당소장), 구중서(문학평론가), 김병상(몬시뇰),
김성훈(상지대 총장), 김현(원불교 교무), 박영숙(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박형규(목사),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이효재(전 이화여대 교수), 조화순(목사), 지은희(덕성여대 총장), 청화(스님), 한승헌(전 감사원장), 함세웅(신부), 황석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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