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뉴스=윤봉섭기자] 국제하이웨이재단(도쿠노 에이지 회장)은 9월11일(목) 오전9시 일본 대마도 아레이에서 도쿠노 에이지 국제하이웨이재단 회장, 오오에 마스오 국제하이웨이재단 이사장, 윤정로 한국UPF 회장, 김동욱 전 국회의원(5선), 조정화 부산시의회 의원, 김진환 대구 수성구의회 의장 등 한일 양국지도자 및 쓰시마 주민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일해저터널 대마도 조사사갱 기공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한일해저터널은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제창해 민간차원에서 추진해온 평화의 프로젝트로 대마도에서 한국 측을 향해 진행되는 조사사갱으로 이번이 첫 기공식이다.
이날 기공식은 한국 거제도에서 66Km 떨어진 일본 대마도에서 진행됐으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불교(일연종), 신도 종단을 대표한 종교지도자들이 한일해저터널 조사사갱 공사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행사를 시작했다. 이후 주요 인사들의 테이프커팅, 기념촬영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어 오오에 마스오 국제하이웨이재단 이사장의 경과보고, 도쿠노 에이지 국제하이웨이재단 회장의 인사말, 가와구치 가츠유키 한일터널추진나가사끼현민회의 의장과 윤정로 한국UPF 회장, 김동욱 전 국회의원의 격려사, 가네자와 요시하루 한일터널추진가나가와현민회의 의장의 만세삼창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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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노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1965년 한국과 일본이 수교를 맺어 어느덧 50주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양국의 발전을 위한 한일해저터널 대마도 기공식을 갖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3가지 관점에서 세계평화를 만들고자 했다. 첫째 평화사상을 통해 세계평화를 만들고, 둘째 국제결혼을 통해 혈통적으로 한가족이 되어 세계평화를 실현하는 것, 셋째 도로를 통해 세계를 연결하여 세계평화를 만드는 것이다. 한일해저터널은 도로를 통한 세계평화를 만드는 방안이다. 이번 한일해저터널 대마도 기공식을 통해 한일 양국이 먼저 평화를 실현해 동북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며 의미를 강조했다.
1981년 11월 10일, 문선명 총재는 서울에서 개최된 제10회 국제과학통일회의(ICUS)에서 전 세계에서 노벨 수상자를 비롯해 각 분야의 학자들 총 720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하이웨이·한일터널 구상’을 다음과 같이 공식적으로 처음 발표했다. “중국에서 한국을 통하여 일본에 이르는 아시아권 대평화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전 세계로 통하는 자유권 대평화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중국대륙에서 한반도를 종단하여 터널이나 혹은 철교로 일본열도에 연결하고 일본을 종단하는 자유를 보장받는 국제평화고속도로권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건설된다면 아시아 3국은 문자 그대로 평화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일체화될 수 있다.”
이미 3년 전부터 대마도의 한국 측 해안에 사갱기지 건설을 시작하여 약 100만㎡ 토지를 마련했다. 그 토지에 폭 8m, 길이 2km의 반입로 건설, 1만 5천㎡ 사갱용지 정비, 권양기 설비용 돈대 조성, 조사사갱 갱구 입구공사 등을 한 상태이다. 이 사갱은 앞으로 대마도 서수도(西水道) 해저에 분포되는 미고결층 조사용이면서 한일해저터널 파일럿터널(선진도갱)으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사갱기지용의 땅은 가라쯔, 이키섬, 대마도를 합쳐 120만㎡이상 확보되었다. 가라쯔 사갱기지(20만㎡), 이키섬(5만㎡), 대마도 사갱기지(100만㎡)로서 각 장소에서 그 지역 사람들의 이해와 협력을 얻으면서 20년, 30년에 걸쳐 매입되었다.
국제하이웨이는 동북아 국가간을 사람, 물건, 자본,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시대를 열어서 경제공동체 구축을 통해 평화와 안전을 이루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 일환으로 ‘한일해저터널’ 프로젝트는 문 총재 비전에 따라 1982년 4월 일본에서 국제하이웨이건설사업단이 발족됐고, 1983년 5월 일본 북해도대학 사사 야스오 명예교수를 중심으로 ‘일한터널연구회’가 설립됐다. 그해 7월에는 일본 규슈(九州) 사가현 가라쯔(唐津)와 이키(壹岐), 대마도의 육상부와 해역부 조사를 개시했다. 그리고 1986년 10월 사가현 진제이초 나고야에서 제1차 조사를 위한 파일럿 터널공사를 시작했다. 일본 측은 지상과 해양, 항공지형 조사를 실시했으며, 터널구간을 따라 환경역학조사도 병행했다. 그리고 가라쯔에서 한일터널 탐사를 위한 굴착공사를 진행했다. 현재 바다 밑으로 547m까지 굴착한 상태이며 현재도 지질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86년 ‘한일해저터널연구회’를 설립한 뒤 1988년 10월 거제도 일대 5개 지역에서 시추조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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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문제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양국 기술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일본의 해저터널 건설 기술은 1964년 세이칸해저터널을 뚫을 때부터 확보돼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1986년 영·불해저터널 착공 때도 일본 측 인사가 기술고문으로 참여했다. 한일해저터널은 해저구간만 150㎞에 달하고,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최대 220m에 이르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개발된 해저터널 굴착 공법이 모두 동원될 예정이다.
19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이 한·일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최초로 언급한 이후 김대중(1999년 9월), 노무현(2003년 2월) 대통령도 해저터널에 관해 긍정적 의사를 표명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도 해저터널은 검토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국정감사에서 해저터널 타당성 여부를 묻는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경남 김해갑)의 질문에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은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할 용의가 있고,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2000년 모리 요시로(森喜郞) 당시 일본 총리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방한한 자리에서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공식 제의한 바도 있으며, 또 2003년 일본 자민당은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100년 동안 이뤄야 할 3대 국가과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문 총재는 2008년 1월 18일 국토해양부에 공익법인인 세계평화터널재단을 등록했다. 동 재단은 각계 인사들을 규합, 한일터널과 베링해협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한 추진체로 ‘베링해협 평화포럼’과 ‘한일터널 포럼’을 발족시키고, 학술연구와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한일해저터널은 남북관계 개선효과도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의 연계를 고려하면 북한 개방, 협력도 앞당길 것이다.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추진하는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평화고속도로의 일환인 한일해저터널은 한일 간에 도로 교통망을 건설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남북통일과 동북아시대의 새로운 질서 개편이 비전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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