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NC 오징어나라 - 황환노 회장 복싱과 함께 한 세월, 3대 째 이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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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으로 오징어나라 성공스토리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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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0.0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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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김남규기자]성공스토리를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은 실패와 성공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신창NC 오징어나라 황환노 회장은 자신의 성공스토리보다 권투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프로복싱 챔피언 출신이고, 아버지도 전일본 복싱선수권 보유자이며 더욱이 할아버지는 한국 복싱사에서 빼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한 때 프로복싱 챔피언으로서 왕성하게 활동했으며, 은퇴 후에 일본 가네히라 복싱 체육관 대표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일본에서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던 황환노 회장. 그에게 인생의 1막은 권투였으며 제 2막은 오징어나라 라고 이야기한다.

할아버지, 일제시대 조선인 최초 올림픽 출전

3대로 이어지는 권투집안. ㈜신창NC 오징어나라 황환노 회장이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다. 한국에서 현대식 스포츠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일제 강점기이다. 그래서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 선수가 36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땃을 때도 일본 선수로 출전해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복싱으로, 1932년 10회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 당시 조선인 출신 황을수 선수가 일본 대표로 출전했던 역사가 있다. 바로 나라의 힘이 없었던 시절, 황 회장은 “당시 할아버지는 게임에서는 이겼지만 결국 할아버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아 3~4위전으로 밀려났고 여기서도 우세를 인정해주지 않아 결국 판정패로 처리되며 4위를 하게 되었다”고 소개한다. 나라의 힘에 따라 메달 색깔이 결정되었다며 당시에는 스포츠정신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권투 선수로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황을수 선수의 선전은 당시 일제치하 나라 잃은 국민으로 살아가던 우리 국민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전했고, 그 다음 대회인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에게 금메달에 영광을 주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당시 동아일보 1932년 12월 9일자 신문에는 “올림픽권투 선수 황을수 군 환영회 개최 사계유지삼인발기로 십일석 식도원서”라는 문구가 실릴 정도로 최초의 올림픽출전 권투선수 였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당시에 대해 황환노 회장은 “할아버지가 조선 사람 최초로 복싱 선두주자라 할 수 있으며, 아버지 황대성 또한 전일본선수권 보유자로 아마추어 국가대표 우승자이시다. 권투계에 있어 우리집안이 유일무이하게 3대째 복싱집안으로, 지금도 알려져 있는 1세대 복싱 원로들은 다들 할아버지 제자이시고, 아버지의 동료 및 후배분들”이라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 국내에 복싱이 소개되며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할아버지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으며, 1932년 복싱협회가 만들어질 때도 주도적으로 앞장선 인물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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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3가 한국체육관 “아버지가 지은 곳” 회상

실제로 황을수 선수는 당시 조선인으로서는 초대 권투계의 거목으로, 당시 한국 프로복싱의 대표적 선구자로 꼽히는 서정권 선수를 길러낸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서정권은 동양인 최초로 프로 복싱의 메카인 미국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활약했으며, 프라이급 세계랭킹 5위까지 랭크된 세계적인 복서로, 1929년 6월 일본행에 올랐던 서정권 선수가 당시 복싱의 거목 황을수를 만나면서 권투에 입문한 것이다.

또한 황환노 회장은 “지금의 을지로 3가에 가면, ‘한국체육관’이라고 있는데, 우리 아버지가 지으신 최초의 종합 체육관이다. 이곳은 복싱, 격투기, 합기도, 유도, 역도 등을 다 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체육 진흥에 이바지한 최초의 종합체육관이다. 그래서 내가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체육책에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왔었다”고 회상했다. 옛날 한 스포츠신문에서도 ‘복싱의 창시자 황을수’라고 소개되었을 정도라는 것이다. 한국 아마추어 복싱에 있어서 그의 이름은 전설이나 다름없었지만 피치 못 할 사정으로, 국내 복싱계에서 ‘황을수’라는 이름은 잊혀지기 시작했다. 이 부분만 생각하면 안타까워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하는 황 회장. 지금이라도 할아버지의 명예가 다시금 복원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3대 째 이어지는 권투집안의 손자이자 아들로서 살아왔기에, 또한 자신도 권투선수로 챔피언을 했던 사람이기에 지금도 한국 복싱과의 인연이 남 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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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막, 운동선수에서 프랜차이즈 대표로 성공

황 회장은 복싱에 대해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권투라는 것이 격한 운동이다 보니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으며, 자신도 복싱 선수라는 것만 가지고 좋을 때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챔피언이란 타이틀. 그에게 영광을 주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일본에서 후배들도 가르치고, 대학교 겸임교수로 2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적도 있었다. 운동선수들이나 복싱선수들은 자기가 하던 분야에서 좋은 시절, 과거 때만 생각하다가 막상 바깥으로 나오면 세상을 모르기에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도 별반 다름이 없었지만 지금의 성공으로 이른 것은 예수님 덕분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낮은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는 점으로 “25년 전에 예수님 만나고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 믿게 되었다. 세상적으로 살 때, 주먹만 썼었는데 예수님의 부름으로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일본 가네히라 복싱짐, 우리말로 ‘체육관’이란 개념으로 시합을 주최하고 관장하는 프로덕션으로서, 일본에서는 가장 유명한 체육관에 가게 된 것이다. 체육관 대표 트레이너로 활동할 당시 황 회장이 오징어 회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 이 시점 “운동하는 사람이 일본에서 칼질하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죠. 일본에서 가르쳤던 제자의 부모가 운영하는 ‘이자카야’라는 선술집에서 칼 다루는 기술을 배우게 되었고, 우리가 상식적으로 맛을 결정하는 것은 좋은 재료의 선정만 생각하지만 식감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 비법이 바로 칼질의 방향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으로, 대각선, 아래 방향 등 칼질 방향에 따라 회의 맛이나 식감이 전혀 달라진다는 것이다. 주먹으로 먹고 살며, 챔피언이란 자부심으로 우쭐대던 황 회장이 예수님을 만나며 겸손이란 것을 배웠고 또한 거친 복싱계에서, 횟집으로 방향을 트는 결정적 계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 덕분에 낮은 자세를 배운 황환노 회장. 그는 “내 마인드는 예수님 덕분에 조금이나마 ‘양보’하며 살자로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서 항상 고객께 감사한 마음으로, 낮은 자세로 손님을 맞이하고 또 대접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낮은 모습으로 오셨고 또한 낮은 자세로 제자의 발 까지 씻겨 주셨던 예수님의 모습. 그런 예수님께 큰 은혜를 받았기에 예수님 흉내라도 내며 살고 싶은 마음이 들다 보니, 손님들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황 회장은 “난 사업할 때 마인드가 이렇다. 내 집에 오는 손님을 정성스럽게 모신다라는 생각. 손님이 들어왔을 때 나이가 20대든 60대든, 가게 주인이 ‘어서오십시오’라고 진심으로 반갑게 인사하는 것과 그냥 형식으로 인사하는 것은 누구든 그 차이를 느낀다”며, 둘의 차이를 모를 것 같지만 손님은 진심으로 반가워하며 대하는 것을 다 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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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된 마음자세

권투선수로 링에 올라가기 전에도 엄청난 연습과 인내를 바탕으로 시합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점주들에게 처음에는 그가 훈련했던 방식과 같이 스파르타식으로 강하게 가르치며, 스포츠 훈련 방식을 사업에 적용하기도 했었다는 황 회장. 그는 마인드 교육과 정신교육을 강조한다. “점주들에게 교육시킬 때 정말 진심으로 손님을 대하고, 고마워하고, 반가워하라고 강조한다. 내 집에 오는 손님을 낮은 자세로 맞이하며 맛과 청결한 음식,적당한 가격으로 손님을 대하고자 하는 진실 된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업한지 15년, 체인사업 13년째 들어서면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점주들과의 상생과 그들을 잘 살게 하는 것이라 밝힌다. “겉치레 하지 않는 진실된 마음으로 다른 곳과 달리 우리 본점은 C급 상권도 안 되는 동네상권에서도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여 맛과 청결함을 유지하다보니 꾸준히 왕성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그래서 "처음 시작하는 점주들이견학와서 보고 자신감을 더욱 갖게 되기도 한다"며 "1999년 말경 일본에서 나와 2000년 IMF 막바지 경 시장이 다 죽어갈 때쯤 신천 C급 골목상권에서 시작한 아이템이 성공한 비결은 바로 남들과 다른 맛과 손님을 대하는 진실된 마음자세였다.

사업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황 회장은 “세상에 잘난 사람, 못난사람이 없다. 내가 이만큼 알고, 저만큼 안다고 남을 무시하면 안되는 이유로어떤 분야에선 내가 더 나을지 모르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또 다른 사람이 나보다 전문가일 수도 있는 것이며, 알고 보면 사람은모두 평등하다는 이야기이다” 그가 그저 지금의 성공에 도취되기보다 손님을 위하여‘웰빙’을 생각하여 인테리어 벽재를 특허받은 황토로 직접 제작 주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사는 가슴으로 해야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요식업에서중요한 첫 번째는 맛! 둘째는 적당한 가격, 셋째는 청결한 가게 분위기, 넷째는 내 집에 온 손님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이라 말하는 그는 “항상 고객께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결국,손님과자신을 위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남자의 마음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자. 자기가 선택한여자, 자신으로 인해 세상에 빛을 본 자식들 그리고 함께 하는 모든 이들까지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강조하는 황 회장. 이제는 예전같이 죽기 살기로 하는 시대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일을 즐기면서 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따라서“자신이 선택한 일이기에 즐기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사업에 임해야 한다”고 말하는 황회장은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있는 ‘사랑플러스’와 아프리카, 탄자니아 등에 조그마한 후원을 하며 자신의 행복을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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