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독립운동가 일강(一江) 김 철(金澈) 선생
10월의 독립운동가 일강(一江) 김 철(金澈) 선생
  • 대한뉴스
  • 승인 2006.09.2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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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및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약한 김철선생을 2006년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적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ㅇ 기 간 : 2006. 9. 1. ~ 9. 30.
ㅇ 장 소 : 근대민족운동관 내
ㅇ 내 용 : 신익희, 안창호 등과 함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성립기념 사진 등 다수의 공적 사진


1886년 10월 15일 전라남도 함평군 구봉마을에서 태어난 선생은 1917년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상하이로 망명하였고, 1918년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되자 여운형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창당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초 선우혁·서병호 등과 함께 비밀리에 국내로 들어와 3·1운동 봉기를 도왔으며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신한청년당을 중심으로 임시정부 수립운동을 폈다. 그해 4월 10일 제1회 임시의정원의 전라도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제2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임시정부의 재무위원 겸 법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특히 8월 5일 임시정부 교통차장에 임명되어 당시 취임하지 않았던 총장 대리를 겸하면서 맹활약하였다.

또한 선생은 1922년 김구 등과 시사책진회를 결성하여 국민대표회의의 개최를 앞장서 추진하였으며 1924년 임시정부 회계검사원 검사장, 1926년에는 국무령제 정부의 각료인 국무원으로 활동하면서 임시정부의 부흥에 힘썼다. 1930년에는 안창호·김구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 조직에 동참하고 국무위원제 정부의 군무장이 되었다. 1932년에는 상하이 한인동포들의 교민단체인 대한교민단 정치위원으로 선출되고, 같은 해 11월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에 임명되는 등 임시정부와 교민단체의 핵심간부로 활약하였다.

윤봉길 의거 이후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이동한 임시정부에서도 1934년 국무위원으로 재차 선임된 뒤 재무장의 일을 맡아 재정확보에 힘을 쏟은 선생은 저장성 항저우에서 1934년 6월 29일 신병으로 서거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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