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넘어 세계 제일의 서울약령시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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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약령시협회’ 박상종 회장을 만나다
  • 대한뉴스
  • 승인 2008.11.20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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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몸이 아픈 응급환자가 의원을 찾는다. 그러나 위험한 병인지라 그가 필요한 약재는 저기 금산에 있는 인삼을 써야 할 터. 환자와 가족 뿐 아니라 그를 진찰하던 의원 또한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몹시 안타까워 생긴 곳이 있었으니 그 곳이 바로 약령시다. 이렇듯 따뜻한 마음으로 생겨난 약령시는 언제나 쌉싸름한 한약 내를 풍기며 어머니의 정성으로 지나가는 이들의 몸 뿐 아니라 마음도 넉넉하게 챙겨주는 인심 좋은 풍요로운 곳이다.


* 명실상부한 한약재 집산지 ‘서울약령시장’


조선시대 병든 백성들을 치료하던 구휼기관인 보제원이 있던 자리에 뿌리 내린 서울약령시장은 명실상부한 한약재 집산지로 자리매김했다. 전국의 한약재 중 70%를 육성시키는 곳으로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서울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서울약령시 한의약문화축제’가 14번째 개최되며 서울의 새로운 축제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서울약령시에는 ‘서울약령시협회’라는 큰 산이 있었으니 이 축에 4대 박상종 회장이 있다.


* ‘서울약령시협회’ 그 중심에 서다


서울약령시협회는 2001년 5월, 서울특별시로부터 사단법인 ‘서울약령시문화재보존위원회’로 법인 설립허가를 받은 후 2002년 4월 사단법인 ‘서울약령시협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 후 한약 산업 중심지로 육성하고자 동대문구청은 재정경제부에 지역특화발전특구 신청을 했고, 2005년 7월 서울약령시 한방산업특구로 지정 승인 받아 특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업적은 박상종 회장의 임기 동안 모든 것이 이뤄졌다. “사단법인이나 한방산업특구로 지정될 때 그 과정이 힘들지 않았다. 적극적인 회원들 덕에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며 협회 회원들과 서울약령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며 뿌듯한 미소를 보였다. 단체를 이끌다보면 삐걱대기 마련이지만 ‘서울약령시협회’는 다른 듯 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원래 단체를 하다보면 여기저기서 말이 많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회원들은 나를 믿어줬고, 내가 추진하는 일들을 뒤에서 받쳐주며 격려해줬다”며 그를 믿고 신뢰하는 회원들을 통해 그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이렇듯 ‘서울약령시협회’는 그로 인해 새롭게 시장 상인들의 중심에 우뚝 서 있었다.


* 세계를 향해 별을 쏘다


서울약령시는 동양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한의약 시장이다. 그러한 명성에 맞게 박 회장은 야심차게 또 다른 계획을 구상중이다. “현재 연구개발 계획이 한창이다. 글로벌 시대에 한의약에 대해 인식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한의약을 세계 수준에 맞게 발전하기 위해 큰 프로젝트로 이곳을 산업화 지역으로 만들 계획이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한편,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로움에만 의존해 안일하게 전통을 이어가기 보단 세계시장으로 나가 미래지향적인 글로벌시대에 걸맞는 한약의 위상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라는 안일한 생각에 우물 안 개구리식의 우리 것 지키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상품 개발을 통해 특허약품을 만들어 효능을 입증해 세계시장에 나가 우리 약령시를 알려 관광객을 유치하고 우리 한약의 우수성을 알리는 게 소망이다”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박 회장은 전 세계가 동시에 볼 수 있는 가장 빛나는 별을 쏘기 시작했다.


* 부드러운 클래식 선율의 리더십


성공리에 마친 축제에 박 회장은 한 가지 아쉬움을 토로했다. “전통한의약에 대한 안전성과 효능을 특집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특정 시장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보여 공공성이 떨어진다고 하여 방송이 무산됐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래도 내가 임기하는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약령시의 발전 그리고 우리 한의약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노력할 것이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췄다. 박 회장의 열정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박 회장의 사무실을 살펴보면 그와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물건들이 놓여있다. 한 켠에는 피아노, 다른 한 켠에는 색소폰이 그것이다. “딸이 11살 되던 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20년 전부터 쳤는데 중간 중간 일이 바쁘다보니 많이 치지 못했었는데, 요새 손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다시 치고 있다.”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피아노 뿐 아니라 색소폰도 무려 7년동안 꾸준히 연습해 온 박 회장이였다. 이런 음악에 대한 열정은 집안 내력에서도 알 수 있었다. 큰아버지이신 기산 박헌봉 선생은 국악계의 큰 1960년에 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술고)를 설립, 초대교장을 역임한 국악 교육의 선구자이며, 아버지 또한 작곡과 작사를 취미로 가지실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있는 분이셨다. 이렇게 박 회장은 부드러운 음악 선율을 통한 진정한 리더십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 ‘나눔의 동산’에서 많은 걸 배워


박 회장은 밝고 호탕한 성격을 적극 활용하는 리더십을 갖고 있다. 서울약령시협회의 회장 뿐 아니라 서울 태평라이온스클럽의 30대 회장으로 역임하여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올해 라이온스 클럽이 30주년을 맞이했다. 이런 역사 깊은 라이온스클럽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많이 갔는데 기름유출사건으로 힘든 태안, 루디아집(맹인)에 봉사활동과 봉사금을 전달했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는데 그 곳이 바로 나눔의 동산이다.”며 웃음을 머금었던 박 회장의 얼굴에 잔잔한 슬픔이 밀려왔다. 춘천에 소재한 나눔의 동산은 할머니들, 정신지체 여성들, '소년소녀 가장' 학생들, 50여명이 아픔을 함께 나누는 기관이다. 아직 복지법인으로 인정되지 않아 도움이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곳. “나눔의 동산을 통해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서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을 보면 고개 숙여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며 라이온스클럽을 통해 봉사를 갔지만 조만간 개인적으로 찾아가 따뜻한 손길을 전할 계획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에 대해 “세상엔 정말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그 분들을 보면 난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겸손한 자세로 따뜻한 마음을 가진 모든 이에게 고마움을 보냈다.


* 기초질서가 잡힌 세상이 되야


세상에는 정말 따뜻한 사람도 많지만 그 세상 속에 불씨를 떨어뜨리는 사람들도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길을 지나가다 보면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는 사람, 침을 아무데나 뱉는 사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 등 기초질서가 엉망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며 고개를 저었다. “선진국으로 접어들었다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모습들은 20년, 30년 전과 거의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인다.”고 말하는 박 회장은 기초질서가 잘 잡혀야 모든 사회가 밝아질 거라며 조그마한 일에도 질서를 지키자며 신신당부 했다.


* 재치 있는 말투로 나를 알리다


박 회장과의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 즐거움 속에서 계속됐다. 대화중에도 순간순간 재치 있는 답변을 하여 필자를 놀라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한 예가 바로 미남협회다. “서울약령시 협회 회장, 서울 태평라이온스클럽 회장, 그리고 한 가지 미남협회 회장이다”며 잠시 호탕한 너털웃음을 보였다. “내가 미남협회 초대회장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느냐.”며 너스레를 떨며 박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에게 약령시 협회장이니, 라이온스클럽 회장이니 이렇게 얘기하는 것보다 미남협회 회장이라고 하면 나를 오래 기억해 준다. 이것이 내가 나를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며 그만의 특별한 PR 방법을 알려줬다. “웃음이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어떤 직책에 놓여있던 사람이 체면만 차리는 것보다 함께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그. 박 회장과의 대화에서 묻어나는 재치는 시종일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리더로서의 너그러운 여유가 느껴졌다.


박 회장이 건네 준 쌍화탕의 짙게 배어나는 향기 속에 인생의 농후한 멋이 느껴졌다. 박 회장의 진솔하고 담백한 이야기 속에 묻어나는 삶의 여유 또한 각박한 일상에서 여유로움을 느끼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언제나 건강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의 인생의 여정이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약령시장의 쌉싸름한 향기처럼 오래도록 묻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담 김남규기자 강희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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