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홍콩… 중국반환 21주년
역사속 홍콩… 중국반환 21주년
  • 대한뉴스 dhns777@naver.com
  • 승인 2018.06.2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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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 1997년 7월1일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 것은 드디어 ‘대영제국의 해’가 완전히 홍콩 앞바다에 진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영국의 측면에서 본 시각일 뿐이다.

ⓒ대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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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입장에서 본 영국의 홍콩 지배 156년(1842~1997년)은 평가가 어렵다. 그것이 중국에 손해인가 이익인가 하는 간단한 질문에도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손해라면 우선 홍콩을 영국에 빼앗긴 아편전쟁의 비극이다. 동양의 지존이었던 청나라가 영국군에 혼비백산한 것은 역사서에서 계속 중국인을 괴롭혀 왔다.


영국이 그 섬을 개발하기 위해 중국인을 노예와 같은 쿨리(苦力)로 부려먹은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그렇게 생겨난 홍콩이었지만 그것이 중국에 기여한 점은 엄청나다.


영국 문화가 이식된 홍콩이 중국의 근대화를 도운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잠자는 거인’은 눈을 뜨기 위해 유럽까지 갈 필요 없이 홍콩에 ‘유학’을 하는 셈이었다.


청말의 지식인인 캉유웨이(康有爲)가 변법자강이라는 개혁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도 홍콩을 방문한 그가 ‘서양에도 법도가 있음을’ 깨달은 데 있다. 쑨원(孫文)도 홍콩 서의서원(西醫書院)에서 의학을 공부하면서 ‘다른 것’도 공부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에 점령된 상하이 영화계는 침묵했으나 영국 치하의 홍콩 영화계가 엉뚱하게 ‘애국’ 영화를 제작한 것도 홍콩의 독특한 성격을 말해준다.


대륙도 타이완도 독재여서 영화계가 위축됐을 때 이소룡과 성룡으로 이어지는 홍콩의 영화계가 중화권의 영화를 세계 수준으로 이끌기도 했다.


홍콩은 또한 국공내전, 중·일대전, 중화인민공화국의 대륙 석권에서 톈안먼 사건에 이르기까지 대륙의 큰 변란이 났을 때 피신처 역할도 했다.

 

그런 격동을 겪을 때마다 인구가 뛰어 현재 740만명에 이른다. 홍콩의 영국 점령과 반환을 보면 새삼 역사에서 승전과 패전, 그리고 득과 실의 계산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한다. (기사제휴=홍콩수요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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