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은 죽지 않았다
대우그룹은 죽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이 대우를 죽였다
  • 대한뉴스
  • 승인 2007.01.0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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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일 전 구조조정본부장 육성 토로

서울역 앞 회색건물 25층이 아닌 서초구 양재동의 개인 사무실. 누구도 알지 못했던 대우그룹의 흥망성쇠를 그룹의 심장부에서 지켜 본 산 증인이며, 자신의 청춘과 인생을 바쳤던 그룹 해체를 주도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의 남자, 공중분해될 수 밖에 없었던 대우그룹과 운명을 함께 해왔던 마지막 구조조정본부장이었던 김우일(金宇鎰)(주)대우 M&A 회장을 만났다.

김우일. 그에게는 ‘대우’ 라는 두 글자가 운명처럼 따라다닌다. 그는 서울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대우에 입사한 이래 그룹 기획조정실 경영관리부에서만 24년간 신입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상무로 근무하며 김우중 회장을 측근에서 보좌해 왔다. 마지막 구조조정본부장으로 퇴임하기까지 24년간 그룹의 형성과 확장, 구조조정, 붕괴의 전 과정에 핵심적인 주역 역할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대우그룹 경영진 어느 누구보다 파란만장했던 대우의 흥망성쇠를 피부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에게 대우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꺼린다. 자신이 모셨던 김우중 그룹 회장이 영어(囹圄)의 몸으로 고생 중에 있는데, 지난날을 복기(復棋)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손사래를 친다. 자신이 몸담았던, 사랑과 정열을 바쳤던 대우그룹의 이면사를 다시 들추어내야 하는 아픔을 애써 참으며 한참 뒤에야 말문을 열었다.

대우그룹은 해체되었지만, 대우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찾아낼 수 있었다. 지난 해 우리 경제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대우건설의 인수전에 이어 알토란같은 대우그룹의 자산들이 여전히 남아, 우리 경제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우중의 열정, 이건희의 경청, 정주영의 돌파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출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일궈낸 신화의 주인공,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김우중이란 이름 석 자는 한 때 우리 젊은이의 우상이었으며, 한국 경제의 자부심이었다.

먼저, 20년 이상 가까이에서 지켜보아왔던 김우중 회장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김우일은 국내외의 언론과 경영학계에서는 김우중 회장을 「경영의 귀재」,「한국을 대표하는 경영인」으로 평가했고 국제적인 상도 많이 받았던 김 회장은 원천적으로 세일즈맨 출신이라는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는 인물이었다고 보고 있다.

『머리가 엄청나게 좋았고 두뇌회전이 빨랐습니다. 회장은 체력도 뛰어나 매년 두 차례 계열사 경영실적 보고를 받는데, 아침 8시부터 자정까지 계속됩니다. 계열사 사장들은 지쳐 쓰러지기 일쑤인데 회장은 끄떡없이 앉아서 묻고 따지고 야단칩니다.

술이나 골프, 그 흔한 스캔들 없이 오로지 24시간 일밖에 모르는 분이었어요. 김 회장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소비성 업종이나 유통업을 멀리하고 제조업에만 전력투구한 것도 존경할 만합니다.』

김우일은 자신이 모셨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그리고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차례로 비교해 가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 경영 스타일은 「경청」, 김우중 회장은 「열정」, 현대 정주영 회장은 「돌파」로 두 글자로 표현했다.

그는 먼저, 삼성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경청을 예로 들면서, 이 회장은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판단한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추가할 때 보고내용을 5시간 동안이나 경청했다. 그리고 난 후에 단 한 마디 ‘잘 해보시오’라고 했다고 전하면서 김우중 회장은 이와 다르다고 했다.

김우중 회장은 무엇보다 열정의 경영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열정이 지나쳤기 때문에 실패했을 수도 있지 않았는가 하면서 조심스럽게 김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김우중 회장은 머리가 좋고 두뇌회전이 빨랐다. 대우의 모든 일이 회장 승인 없이는 집행되지 않았다. 임원들과 5시간 동안 회의를 하면 김 회장 혼자 전략을 분석하고, 매출을 분석한다. 주위 참모는 경청하는 사람에 불과하고, 임원들은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며, 그 결과 판단의 미스가 생겼다고 이야기한다.

회장도 인간인데 그 어마어마한 그룹 전체의 일을 어떻게 혼자서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겠는 가 반문한다. 권한을 하부로 위임하고 큰 일만 결정하는 스타일로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바뀌었으면 좋았을 텐 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1991년 무렵 대우자동차와 미국 GM 자동차와 지분을 둘러싼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다. GM은 대우와 합작 파트너였지만 사사건건 시비만 걸고 기술이전에는 인색했다. 또 자동차 메이커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모델 변경능력을 일부러 사장(死藏)시키는 등 협력경영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GM과 빨리 결별하거나 자동차사업에서 손을 터는 것이 최선이었다.

대우나 GM이건 상대 지분 50%를 매입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삼성 그룹에서 대우자동차의 지분을 5조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대우자동차를 GM에 대우 지분을 팔던가, GM 지분을 대우가 인수하던가, 아니면 제3자인 삼성그룹에 5조원에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이 있었다.

삼성 입장에서는 자동차산업에 진입하려면 시장 진입 비용이 7조원 이상 들 것으로 계산했는데, 5조원에 대우 지분을 인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으며, 김우일은 이 기회에 골치 아픈 자동차를 털어 내고 인수대금 5조원으로 건설· 무역· 중공업· 전자· 조선에 집중하면 그 때까지의 부실을 일거에 해결하고 그룹이 새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우중 회장의 열정 때문에 대우자동차를 포기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대우자동차가 20조원의 부실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김 회장의 열정 덕분에 자신은 새벽 3시에 출근하기도 했다고 한다. 새벽 3시에 전화를 받고 회사로 출근해서 힐튼호텔에 마련된 김 회장의 집무실에 가보면, 이미 몇몇 임원들을 불러놓고 회의 중인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새벽 2시에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회사로 출근해 회사 업무를 파악하는 등, 김우중 회장의 일에 대한 열중은 혀를 찰 정도라고 한다.


재벌정책, 역대 통치자 의도에 따라 달라져


대우는 한때 세계경영이란 구호를 앞세워 칭기즈칸 이래 최초로 서구 유럽을 총칼이 아닌 상품으로 지배했던 세계적인 기업이었다. 대우는 대기업· 중소기업· 협력회사 등 수천 개의 기업과 전후방으로 연결되어 있고 종업원이 수십만 명에 이르는 대기업이었다. 또한 대우의 역사는 한국 산업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김우일은 77년 대우그룹 입사 시절은 박정희 대통령 통치시절 이었으며, 대리시절은 전두환, 차장 때는 노태우, 부장 시절은 김영삼, 이사 때는 김대중, 그리고 강제 퇴직 당하고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든 올해는 노무현 정부라며, 역대정부에 따라서 재벌정책이 상이하다며.

그는 대통령과 재벌정책의 불가분의 관계를 고사성어로 예를 들어가면서 비판했다.

먼저 박정희 대통령시절의 재벌정책에 대해서는 일언지하(一言之下)라는 네 글자로 표현했다. 한마디로 잘라 말하면, 일언지하의 뜻처럼 박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따라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대우그룹의 태동과 성장에 박 대통령의 도움이 컸다. 박 대통령은 대구 사범고 시절 은사인 김용하(제주도지사를 지냄)의 3남인 김우중 회장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원군이 되었다. 박 대통령은 김 회장에게 총칼을 든 칭기즈칸이 아니라, 화이셔츠, 수출상품을 든 김기즈칸이 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의 재벌정책을 좌지우지(左之右之)라고 표현했다. 전 대통령이 이리저리 제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다루었다. 경제논리 보다는 대통령의 생각과 의중대로 재벌정책을 펼쳤다면서 현대양행(전, 한국중공업)을 대우가 맡아라, 현대는 자동차산업만 하라, 삼성은 전자산업만 하라는 등 산업합리화 조치 등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했다. 당시 경남기업을 대우가 인수하거나, 한양주택을 남광토건이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라며. 대우로서는 현대양행을 인수해 약 1,000억 원의 손해를 보았다고.

노태우 정부의 재벌정책은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표현했다. 기업을 적대시하지 않으면서 당근과 채찍질로 조정했다. 조삼모사라는 말처럼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하듯이 재벌들에게는 비업무용 부동산을 처리 하라고 하면서 채찍을 가해, 그 뒤로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김영삼 정부의 재벌정책은 격화소양(隔靴搔癢)이라고 표현했다.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는 뜻처럼, 기업의 가려운 점은 긁지 못하고 겉만 긁었다면서 기업경제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기업의 부실만 누적되었다고.

김대중 정부는 재벌정책을 수수방관(袖手傍觀)했다고 지적하고 한다. 간섭하거나 거들지 아니하고 그대로 버려두었다. 대외적으로는 시장경제체제를 내세우고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가이드라인에 적합한 회사는 살고, 가이드라인에 맞추지 못하면 회사는 부도나고, 그 부도난 기업의 CEO에는 청와대나 권노갑 씨가 추천한 인사를 지명했다.

노무현 정부의 재벌정책을 동상이몽(同牀異夢)이라고 지적했다. 겉으로는 지지하고 받드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반대하는 것 처럼 대통령 자신의 생각과 기업 생각이 항상 달리 가고 있다면서 역대 대통령의 재벌정책을 고사성어로 들려준 것이 인상에 남는다.

좌지우지, 조삼모사, 격화소양, 수수방관, 동상이몽의 재벌정책에 따라 기업들은 멍이 들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대우그룹이다. 67년 설립해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정책에 따라 70년대에 급팽창한 대우그룹은 전두환 정부 들어 정부의지에 따라, 현대양행을 인수하고, 83년에 들어서는 대한전선을 부실은 안고 인수해 태동한 대우전자와 마찬가지로,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등 대부분의 기업들을 부실을 안은 채 정부 정책 당국자의 의지와 외압에 의해 인수하는 경우가 맡았다.



하이마트, 김우중 회장이 설립한 회사였다.


대우그룹의 위장계열사와 김우중 회장의 비자금 조성 등 항간의 의혹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김우일은 “대우그룹은 이미 1999년 워크아웃 결정이전에 ㈜대우와 대우자동차를 제외한 모든 계열사를 매물로 내놓은 상태에서 법정관리 신청을 준비했을 정도로 자금이 바닥난 상태였다”며 “검찰의 생각대로 추가로 숨겨 놓은 비자금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이 김우중 회장 귀국하기 전에 100번 이상이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다. 귀국 후에도 40번 정도 중수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다면서, 그 조사내용은 고위 정치인에 정치자금 준 내용, 회장이 회사 돈 빼돌린 것, 위장 계열사였다면서, 드러난 것이 없다고 했다.

이어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그의 회사생활과 관련된 개인적인 약점을 들어 김우중 회장을 엮고자 시도했을 텐 데 어려운 점은 없었는가 묻자, 그는 24년간 대우그룹 계열사의 부정 등 감사업무를 맡아왔던 자신이 부정과 비리가 있다면 어찌 기업의 내부 감사를 할 수 있었겠는 가 반문한다. 돈은 몰랐지만 24년의 깨끗한 회사생활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그러나 대우그룹과 김우중 회장의 지시에 의해 인수한 기업들이 김 회장의 개인적인 어려움을 틈타 개인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빼돌리는 무리들에 많았다면서, 김 회장이 진두지휘해 대우그룹이 인수한 관계 회사 등 기업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자금 회수는 대우그룹이 분식회계로 앗아간 국민의 혈세를 찾는다는 의미에서 사법당국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 게을리 하지 말기를 부탁하기도 한다. 그 실례로 하이마트의 성장 이면의 자금 흐름을 체크해 보기를 권한다.

하이마트는 “지난 1993년 한국신용유통에서 다이너스카드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하이마트가 탄생했다”면서 “김우중 회장이 사비를 털어 하이마트 설립을 진두지휘한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주)대우의 국내영업부를 이전시켜 한국신용유통이란 위장계열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바로 하이마트의 전신. 당시 자금은 김우중 회장이 15%를, 이수화학·신한기공·신성통상 등 관련회사가 85%를 댔다.

이는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출신인 정주호씨가 지난 2002년 선종구 하이마트 사장을 상대로 제기한 당시 소송에서 “하이마트 지분 15%(7만8000주)는 김우중 회장이 그룹 임직원을 통해 출자한 차명주식”이라면서 “이 주식을 선 사장이 임의로 처분했다”고 밝힌 것과 같다.

그는 “하이마트 설립 당시 주요 출자사로 계획됐던 계열사 중 한 곳이 기업공개(상장) 문제로 당초 배정된 15억 원의 자본금 중 7억 원은 출자하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김 회장께 보고를 했더니 그렇다면 7억 원을 줄 테니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면서 “그 돈으로 직원들 이름을 빌려 차명으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연찮은 대우건설 매각 지연, 뒷 배경 궁금


대우건설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작년 한해만 해도 전체 수주 6조624억 원, 매출은 4조7804억 원으로 사상 최고 경영실적을 이뤄냈다. 따라서 대우건설은 기업 재계 판도를 바꾸는 알짜기업이었다. 대우건설 인수전은 대형 건설사로 건설업계 지각변동의 진앙지로, 인수전에는 두산, 한화, 금호아시아나, 프라임, 대주, 유진, 경남기업, 대우자판과 해외 자본 하나가 인수전에 참여했다.

김우일도 대주그룹의 대주홀딩스사장으로 있으면서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그는 2000년 3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대우건설이 6년 만에 매각 절차를 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들려주었다. 2001년에도 대우건설을 매각할 수 있었는데도 안 팔았다. 매각이 좀 더 빨랐다면 2004년 3월 대통령의 친형에게 대우건설 사장 연임을 부탁하는 남상국 사장 자살사건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이 (주)대우로부터 분할된 지 얼마 되지 않고 당시 정부는 대우건설에 대한 조기매각 방침을 내비쳤다. 그래서 그는 자본금 50억 원 규모인 대우CRC란 구조조정전문회사를 만들어 대우건설 인수에 착수했다. 당시만 해도 대우건설은 규모가 크지 않았다. 주가가 바닥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에 5000억 원 정도면 인수가 가능했다. 그래서 해외 투자자를 중심으로 5000억 원을 확보한 뒤, 매각 공고를 기다렸다.

매각은 이루어지지 않고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DJ 정부에서 우리에게 대우건설에 대한 수의계약을 해주기로 했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대우건설 회생보다 비자금 조성에 더 큰 목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대우건설 매각은 경제논리 보다는 정치적 입김이 좌우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금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대선 이후인 2003년 말과 2005년 중순에도 그는 각각 1조원과 1조5000억 원의 인수 자금을 마련해 대우건설 인수를 준비하기도 했다고 한다.

2004년 말 삼성증권과 시티글로벌이 매각 주간사로 선정되었다. 2004년 매각 주간사 선정 과정에서 KAMCO의 간부급 3명이 특정업체에 특혜를 주기 위해 평가기준표를 조작한 것으로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매각 주간사를 맡고 있는 씨티글로벌과 같은 씨티그룹 소속인 씨티벤처캐피탈(CVC)아시아퍼시픽이 예비입찰에 참여하기도 했다. CVC아시아퍼시픽은 우선 협상자 선정 과정에서 탈락됐지만, 같은 그룹 소속이다 보니 M&A 경쟁에서 중요 정보가 흘러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 등 석연치 않은 구석도 많았다.

2005년 초 매각 주간사로 삼성증권이 결정되었다. 김우일도 대주그룹홀딩사 사장을 맡아 대주그룹(회장 허재호)이 전략적 주체가 되고, 모공제회와 사모펀드, 중견기업 8개 등이 참여하는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1년 후인 2006년 1월에야 매각 결정공고가 나왔다. 호남 그룹의 맹주인 금호그룹이 유력 경쟁자로 부각되었다. 항간에서는 금호그룹에 준비기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시간을 끈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도 생겼다.

입찰자 중에서 가장 먼저 외국 자본이 국민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이어 두산이 탈락했다. 두산은 형제간의 투서로 인한 비자금 조성 등 도덕성이 문제가 되어 일차적으로 탈락했다. 한화도 최고 경영진의 문제로 자진 백기를 들었다.

이어서 진행된 예비입찰에서 대우건설이 워크아웃이 진행된 후 2001년부터 대우건설 매각에 관심을 가져온 김우일은 자신이 대우 인맥이라는 단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가 추진중인 대주그룹을 예비입찰에서 탈락시켰다. 당시 탈락한 경남기업, 대우자동차판매(대우자판)는 대우의 옛 계열사들.

자산관리공사는 그동안 가이드라인으로 정했던 매각 주식을 51%에서 72.1%로 상향 조정했다. 그동안 4조원이면 인수할 수 있었던 대우건설 인수가격이 7조원선으로 상향시켰다. 금호, 프라임, 유진 중에서 기업 규모면에서 특정기업에 유리한 구도가 된 것이다. 매출액 규모로 보아도 금호는 13조, 프라임은 1조원 선, 유진 6천억 원 선이었다.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통해, 대우그룹 재건 의지 다져


김우일에게 앞으로 남은 대우그룹의 자산 처리에 대한 뒷이야기를 미리 당겨서 물어보았다. 그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아직까지 매각이 안 된 곳은 대우인터내셔널·대우조선해양·대우증권이라면서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 펀드를 조성해 올 하반기 대우인터내셔널 매각 공고가 나면 인수전에 뛰어들겠다고.

그는 대우중공업이 두산으로, 대우건설이 금호로 가는 등 대우의 브랜드를 단 기업이 역사적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김우중 회장 생전에 「대우」의 정신이 깃든 대우인터내셔널은 인수하고 싶다고. ‘대우’라는 기업 브랜드를 살리고 싶다고 밝혔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묻자, 특정 그룹에 귀속됨이 없이 펀드를 조성해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하고 ‘대우’ 브랜드를 살리고 싶다고 한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자산관리공사가, 대우조선·대우증권은 산업은행이 현재 대주주로 돼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선박건조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고 있으며,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기업은 조선업계 1위 기업이 된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선박 건조뿐 아니라 군함 및 잠수함 건조와 같은 방산 부문도 사업에 포함돼 있다. 그래서 외국 기업보다 국내 기업에 매각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매각 대상은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 포스코 등으로 좁혀진다. 이 경우 매각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대우증권은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계열사로 존속할 지, 매각할 지는 불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금융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매각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며, 무엇보다 종합상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의 매각에 기업들의 관심이 고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경우 미얀마 해상 A-1 광구의 가스전 개발에 성공하면서 주가가 큰 폭의 상승을 거듭하고 있다. 매각 절차에 돌입하면 미얀마 가스전은 분할 매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특히 대우인터내셔널은 현재 지사 및 무역법인 14개, 투자법인 12개 등 중국 내에 26개 거점을 두고 있으며, 중국 산둥시멘트 등 전 세계에 퍼져 있는 100여 개의 현지 법인은 대우인터내셔널의 큰 메리트로 작용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100개의 현지법인을 갖춘 종합상사에 국제금융에 많은 노하우를 구축해왔습니다. 무엇보다 기업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프로젝트별로 투자하는 ‘국제금융’은 매력적입니다. 우리나라 자본은 투자에 보수적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개발에 적합한 국제금융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이 계속되어 온 세계경영의 화두입니다. 부동산과 개발사업에 국제금융이 중요하며, 접목되어야 합니다.』

그는 대우실업를 모체로 출범한 대우인터내셔널은 국제무역, 해외자원개발, 국내외 투자사업, 프로젝트사업을 하며 100여개 해외 네트워크를 갖춘 종합무역상사로 종합상사가 없는 그룹은 많은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GS그룹은 물론, 대우인터내셔널이 해외자원개발에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점에서 SK그룹과 포스코 또한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종합상사가 없는 국내 30대 그룹의 인수 참여는 물론,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란싱그룹의 상하이 자동차 등 중국 기업 자본이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고.

기업문화 차이와 노사간의 갈등으로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상하이 자동차가 어려움을 겪지 않았느냐고 지적하자, 그는 대우인터내셔널의 매력을 중국 산둥시멘트를 그 한 예로 들었다. 산둥시멘트 공장 인수에만 5,000억 원을 준비했던 것이 중국이라고 역설적으로 그 가치를 제시한다.

대우인터내셔널이 가지고 있는 현지법인에는 경영성과가 좋은 기업이 많다며, 중국의 대우 차이나는 17개 현지법인에 총 3000여명의 직원이 한해 20억 달러 규모의 수출을 하고 있다. 그 실례로, 중국 산둥시멘트와 고급 아트페이퍼를 생산하는 무단장 대우제지, 두산에 넘어간 대우종합기계를 들었다.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으로 곳곳에서 건설붐이 일면서 중국 내수시장에 생산량의 50%를 판매하고 있고 나머지는 수출을 하고 있는 산둥시멘트, 천진의 국영기업을 리스방식으로 헐값에 인수, 제 2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무단장 대우제지.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무리한 투자’, ‘세계 경영의 허실’이라는 비판 운운하지만, 이제 그 결실은 대우가 아닌 다른 제3자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에 대한 의지를 그는 다진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발길을 나서자, 우리 정치와 기업경제의 이면을 자전적 기업소설로 쓴 자신의 저서 “문어는 왜 죽었는가?”((주)대우M&A 발행)를 전하면서 대우그룹의 뒷이야기를 유추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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