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둥둥 내사랑아, 63년 오매불망 바다사랑
어허 둥둥 내사랑아, 63년 오매불망 바다사랑
한국 수출입 항만 발전 이끌어 온 일우선박(주) 서정권 회장
  • 대한뉴스
  • 승인 2009.06.1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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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거꾸로 놓고 한반도를 보자. 한반도는 더 이상 아시아 대륙의 동북쪽 끝에 있는 작은 반도가 아니다. 유라시아 대륙을 발판으로 우뚝 서 있는, 바다에서 육지에 이르는 교두보이자 육지에서 바다로 나가는 출발점이다. 그동안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 속에서 열강의 침략을 수없이 받은 수난의 역사만을 간직한 땅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육지를 떠나 바다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면 21세기 해양 강국으로 꿈틀대는 한국의 모습이 그려진다.

과거에는 또 어땠는가? 바다를 통해 미래를 내다본 해상왕 장보고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국력을 키우면서 문화적인 교류와 외교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현재 한국정부는 blue economy 시대를 맞이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환경문제와 버릴 수 없는 경제성장,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해답을 해양에서 찾고 있다.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 이란 슬로건하에 개최되는 2012 여수세계박람회와 그에 앞서 해양을 기반으로 한 미래 녹색성장 구현을 주제로 지난달 7일 열린 국제 심포지엄도 그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는 바다를 벗어나서는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다.

바다를 떠나 이야기 할 수 없는 한반도처럼 한 평생을 바다와 더불어 살아 온 이가 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오직 배와 바다를 향한 오매불망 사랑에 잠 못드는 일우선박(주)의 서정권 회장이 바로 ‘그’ 이다. 어쩌면 바다와 인연이 멀 수도 있는 두메산골에서 향학열에 불타던 한 소년이 성실함과 강인한 의지로 해군제독이 되고 다시 바다를 무대로 초창기 한국 해양산업의 선구자로서 일우선박(주)을 설립, 내실있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기까지 서정권 회장의 역동적인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고난과 역경을 이기는 한국인의 ‘성공 DNA’

산 속 깊은 골짜기 두메산골에 비가 내리면 유난히도 좋아하던 어린 소년이 있었다. 1,400년의 역사 속에 마곡사의 불당이 터를 누르고 있고 정감록의 정기가 어린 공주 구계리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은 향학열이 남달라 고난의 일제시대 삼십여리의 재를 넘어 가는 고된 통학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여기에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불요불굴의 강한 집념과 의지로 수석은 항상 그의 차지였다. 그 후 소년은 해방과 더불어 해군사관학교 3기 사관후보생으로 지망해 당당히 합격했다. 그 당시의 해군생활에 대해 서 회장은 “해군은 화려해보이지만 동해, 서해로 나가서 육지와 결별한 채 한 달 이상을 항해해 고생스러운 점도 있다. 또한 배에서 전기를 발전해서 쓰고 물도 떨어지면 해수를 끓여서 마시기 때문에 바다는 ‘육지와 떨어진 한 인간사회’ 로 볼 수 있다” 고 말했다.


각 해상전투에 투입돼 삼해 바다를 누비면서 활약하던 서 회장은 사라호 태풍이 내습했을 때 구조분대 사령관으로 임명돼 동해바다에서 손을 걷어 부치고 좌초된 해군함정과 민간 선박 구조에 나섰다. “그 당시 도로 위에 어선들이 다 올라가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고 당시를 회상하며 “앞으로 태풍으로 인해 조난된 선박들과 기름이 유출된 선박들을 제일 먼저 구조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그 방면으로 일가견도 있어 예인선을 위주로 한 선박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고 서 회장은 밝혔다. 이와 함께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건은 우리 공동의 책임이며 정부가 예인선을 출동시켜 현장에서 직접 유료 휀스를 쳐서 배의 펌프를 끌어올려 탱크에 싣도록 하고 배가 떠내려 왔을 때 긴급명령을 발동하고 비상소집을 했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래도 한국인이 저력이 있는 것이 미국이 해양 안전에 많은 투자를 해도 화재 등의 사고가 나는 것에 비해 우리 해군은 북한을 경비하기에 바쁘고 또 고가의 안전장비가 없어도 해양사고가 거의 없다” 고 말했다. 또 “한국인들이 기능올림픽에 나가서 77년 23회부터 91년 31회까지 양복재단, 이발 등 각 종 부문에서 9연패를 휩쓸지 않았냐” 고 반문하며 “박세리, 신지애 등의 한국여자골퍼들이 세계를 제패했고 전 세계 병아리 감정사 중 60%가 바로 한국인이다. 이처럼 나라는 작지만 한국인은 DNA자체가 달라 선천적으로 손재주와 감각이 발달, 안전과 예방에도 뛰어난 소질이 있다” 고 강조했다. 덧붙여 안전부분에 미국의 절반만 투자해도 지금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며 “기름유출사고는 이제는 과거지사다. 다만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서 정치만 잘 해주면 세계 1위의 해양대국이 될 수 있다” 고 밝혔다.


탁월한 지휘능력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서 회장은 마침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해군제독으로 발탁되었다. 해군공창장으로 재임시에는 ‘우리가 만든 배로 우리 바다 지키자’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해군 함정 국산화와 해군 근대화에 선두적 역할을 했으며 현장경험을 인정받아 우리나라 기능공들에 대해 시험 문제를 출제하기도 했다. 그 후 이 같은 업적들을 높이 평가받은 그는 보국훈장 광복장, 보국훈장 천수장, 보국포장을 수여받았다.


바다의 사나이, 바다를 무대로 선박 사업가로 변신

서 회장은 군복무중 “고속정 엔진을 MTU엔진으로 처음 도입한 후 국방장관을 초청해 시운전을 했다” 며 잠시 당시의 감격에 젖었다. 특히 그는 MTU엔진을 도입함으로써 우리나라 고속정을 건조해 북한고속정을 압도하는 전기를 마련했고 이후 정부에서 MTU엔진을 국산화시켜 철도, 기관차, 탱크, 경비선 등에 국산화시킨 엔진을 많이 보급하게 되었다. 또한 서회장은 해군전역 당시 MTU엔진의 부사장이 “한국에서 MTU엔진을 사용하게 해줘서 고맙다” 며 준 총대리점 인정서를 전역기념으로 기증하기도 했다. 이 후 해군제독으로 전역한 그는 코리아타코마조선(주)에서 3년간 근무 후 사업가로 변신, 일본에서 예인선을 처음 들여와 일우선박(주)을 설립했다. 그리고 국내 유일의 굴절식 소방탑과 분말, 포말 소화설비를 갖춘 소방 및 방제겸용 선박이자 “서해호” 라고 불리우는 예인선으로 여수항만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선체를 잘만 유지하면 30-40년은 쓸 수 있는 예인선은 보통 한척당 60억에서 70억 가량으로 수출입 항만 물류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주 소형인 선박들을 제외하고 예인선이 화물을 싣은 선박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부두에 이접안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보통 무게가 20만톤~30만톤, 전체 길이가 200m이고 수심 20m 정도를 들어가는 대형 선박들은 항구가 좁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배를 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영리적인 목적도 있지만 일우선박(주)이 우리나라 수출입 항만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력없는 '너도나도식(me-too-ism)' 진출 버려야

여수에서 초창기 성능이 제일 좋은 배로 일우선박을 설립했던 그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선박회사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뭐 좀 될 것 같다하면 너도나도 다 덤벼 3개이면 충분한 선박회사가 지금은 13개사로 늘었다. 미국, 일본의 경우에는 큰 항구에도 많아야 2, 3개사로 그 이상을 넘지 않는다. 또한 허가제였던 선박사업이 반대 여론으로 등록제로 바뀐 것도 문제이다” 라고 서 회장은 설명했다. 이어 “중국인은 나 살고 너 죽자, 한국인은 너 죽고 나 죽자, 일본인은 너도 살고 나도 살자” 라는 세간의 말을 인용하며 한국인의 적극적인 성향을 엿볼 수 있지만 그 기저에는 상당히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한국의 기업풍토가 내재되어 있다면서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고 역설했다.


또한 “나라는 작지만 한국인의 타고난 손재주와 감각,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쉽이 만나 산업화와 공업화를 촉진시켰고 그 결과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면서 서 회장은 젊은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 것을 주문했다. 또한 “한국은 조선기술, 항해술 등 전반적인 부분이 뛰어난 세계 제일의 조선국이자 5~6위를 달리는 해양강국이다. 과거 일본이 다른 산업의 발달로 선진화 되면서 많은 인력들이 좀 더 편하고 고급스러운 일을 한다며 조선소를 등진 사이 한국이 조선대국으로 급부상했다” 고 설명했다. 그리고 현재 해양업계가 어려운 것은 너도나도 뛰어들어 과잉투자를 하고 조선소를 너무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현재 해양업계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한편, 공창장, 함정감 재직시 조선학회, 기계학회, 금속학회, 전자공학학회 등을 개최해 우리나라 공업발전에도 기여한 서 회장은 부모님의 60주년 결혼을 축하하는 회혼례, 88세 미수연, 99세 백수연을 열어 드리는 등의 효행으로 그 소문이 자자하다. 이에 지난 96년 공주시에서 시상한 효행부문 공주시 문화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충무공의 결사보국정신으로 예인선과 함께 세계로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앙드레 말로는 마음속에 간직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 꿈에 집중하고 노력하다보면 자신의 이상에 걸맞는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평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흠모해 거북선 모형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던 서 회장은 명랑해전에서 13대 133이라는 엄청난 전투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대승을 거두었던 이순신 장군과 닮았다. 이순신 장군이 “싸움에 있어서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는 결사보국정신으로 명랑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듯이 서 회장도 강인한 극기력으로 두메산골 소년에서 해군제독으로 또 한국 해양산업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바다와 함께한 63년간의 세월 중 30년간을 여수 앞바다에서 해난구조와 예선업을 해온 사람으로서 여수세계박람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한국이 세계 속에 우뚝 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는 그는 앞으로도 일우선박(주)과 함께 ‘一宇’ 라는 그 이름처럼 한국을 세계적인 해양대국으로 만들어나가는 일에 앞장설 것이다.


취재/백영미 기자 사진/박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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