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호 칼럼] 제천시, ‘조강지처(糟糠之妻)’
[김병호 칼럼] 제천시, ‘조강지처(糟糠之妻)’
  • 김병호 논설주간 kbh6007@hanmail.net
  • 승인 2024.02.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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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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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지처’란,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을 때의 아내라는 뜻으로 몹시 가난하고 천할 때 고생을 함께 겪어온 아내를 이르는 말이다. 지게미는 막걸리를 거르고 남은 찌꺼기를 말하는데 주로 1960년대 전후해서 막걸리 양조장에 가면 볼 수 있었다.

요즘이야 먹을 것이 널려있어 쳐다도 보지 않지만 배고픈 시절을 지나온 70대 이상 어르신들은 지게미를 알고 있을 것이다. 배가 고파 양조장에서 지게미를 얻어먹고 나면 술기운이 약간 남아 있는 탓에 힘내서 농사를 지은 시절도 있었다.

‘조강지처’ 눈물겨운 사자성어다. 흔히 사람을 평가할 때 같이 고생한 아내도 배신하는 인간을 믿고 가까이할 수 있는가, 라는 불신이 주변에 맴돌 때가 많다. 자식 놓고 평생을 함께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오뉴월에도 찬 서리가 내린다’ 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아서는 여성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을 두고 떠나는 심정이 오죽하랴, 아내가 떠나며 얼마나 원한을 품겠나, 속담에 “조강지처 버리고 잘 되는 사람 한 사람도 못봤다”는 속담도 있다. 요즘“조강지처가 좋더라 썬 연료가 좋더라” 는 광고도 있다.

100세 시대를 간다고 떠들더라만, 나이 70 고개 넘어서면 큰소리가 소용없는 것이다. 인생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조금 지나면 염라대왕이 손짓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인생인데, 무슨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자충수를 둘 일이 있으랴.

선출직 공직자도 도덕성이 필요하다. 자신의 행위가 타의 모범이 될 때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가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청렴을 주장하려면 자신의 주변 관리부터 모범이 돼야 한다. 자신 주변 관리는 시궁창 냄새를 풍기면서 청렴을 주장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쾌락은 순간이고 지나면 그뿐이다. 세상에 영구한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순간을 인내하지 못하고 평생을 따라다니면서 뒷바라지해온 ‘조강지처’를 배신하는 행위는 자신을 괴멸시키는 아주 못 난 행동이다. 젊은 사람들이 필자보고 어느 시대 사람이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시대를 차치하고 아내와 자식을 버리면 그 사람 신상이 이롭지 못하다.

이성을 잃고 어떤 권력을 향유 하며 살아도 종국에 후회할 날이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세계사든 국사든 어떤 곳에도 망할 때는 여색이 주변에 깔려있고 방종이 뒤따른다. 몸이 아프거나 신상이 괴로울 때 생각나는 것은 처와 자식밖에 없더라.

눈물 흘려 줄 사람도 ‘조강지처’고 자식뿐이며 누가 더 있겠는가, 경력 앞세우고 총학생회장을 했다느니, 민주화 운동을 했다느니, 고시 합격해서 어디에 있었다느니 해도 다 부질없는 것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하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해도 만족하다.’ 그렇게 살아도 즐거움이 있다는 말이다.

색욕에 미치는 것도 젊었을 때 말이다. 육신이 늙고 병들었는데 무슨 소용 있나, 돈 떨어지고 남자 능력 사라지면 여심은 파랑새처럼 날아가 버린다. 나폴레옹이 자신을 출세시켜준 조제핀 드 보아르네와 이혼하고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인 마리 루이즈와 재혼해 많은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양심’을 숨기고 자신은 완벽한 척하지만, 세상에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은 극히 드물다. 타인이 벌써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한시적이고 영원한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은 간다. 그 후에 자신에게 다가올 형편을 망각하면 안 된다.

최고의 지식을 앞세워 최고의 쾌락을 향유 하는 것 같지만 세월은 가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 경남 어느 고을에서 책방 하는 노인 내가 목청을 높여본들 지금은 콧방귀 뀌는 사람뿐일 것이다. 누가 그 소리를 듣고 있을지 의문 아닌가.

나이 70 줄에 조강지처 버려봐야 육신에 주사기만 잔뜩 꼽혀있는데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을 ‘천벌’이라고 하지, 적을 만들지 말고 주변을 포용하라. 나이 70인데 얼마 더 살겠다고 무례한 행위를 하는가, 삼천 궁녀도 건강할 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일 뿐 부질없는 삶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란, 생명이 있는 것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된다고 하는 사상을 뜻하지만, 삶의 현실은 윤회와 무관하다고 감히 주장하며 어리석은 행동은 삼가는 것이 후회를 낳지 않는 지름길이란 것을 곧장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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