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위상마저 흔들
왕의 남자 위상마저 흔들
침묵 깬 이재오
  • 대한뉴스
  • 승인 2011.06.1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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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재오 특임장관의 발언이 심상치 않다. 4ㆍ27 재보선 참패에 따른 책임론과 5ㆍ6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의 친이재오계 패배로 지난 한 달여간 침묵을 지켜왔던 이 장관이 이달 1일부터 작심한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당내 소장파와 친박계는 물론 청와대까지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때문에 청와대에선 이 장관에게 입조심을 주문할 정도다. 현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며 ‘왕의 남자’로 군림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간의 동반자적인 관계는 날로 짙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 장관의 발언 속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견제가 추측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래 권력을 둘러싼 이 장관과 박 전 대표의 암투가 본격화되고 있다.


강연정치와 현장탐방을 앞세워 외곽으로 돌던 이재오 특임장관이 지난 1일 트위터 재개를 선언했다. “한 달여 동안 자신과 정국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이 장관은 “국무위원으로서 국정현안에 대한 무한책임을 갖고 있다. 당적을 가진 국무위원으로서도 당의 이러 저러한 모습에 대한 반성의 시간도 가졌다”면서 새 도약을 알렸다. 사실 이 장관의 움직임은 당 안팎에서도 예상했던 바다. 당장 오는 7ㆍ4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 장관의 출마가 점쳐졌다.

그러나 이 장관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특임장관으로서 당이 4ㆍ27 재보선에 실패한 데 따른 책임을 지겠다는 것. 대신 전대에 나설 친이계 후보를 도울 전망이다. 구주류로 전락한 친이계의 좌장으로서 당내 세력 재편과 맞물린 전대를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6ㆍ3 사태 관련 ‘앙금’ 여전


이미 일각에선 전대에 나설 친이계 후보들이 이 장관을 접촉해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는 후문마저 들린다. 선거인단이 늘어나긴 했지만 전당대회는 결국 조직선거라는 점에서 당내 탄탄한 조직을 갖고 있는 이 장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게 친이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때문에 당 안팎에선 이명박 정부의 집권 하반기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 장관, 박근혜 전 대표의 관계 설정에 따라 좌지우지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 시점에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의 동반자적인 관계는 날로 짙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세종시 파문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던 양측은 같은 해 8ㆍ21 회동을 계기로 ‘화해 무드’를 이어왔다. 하지만 올해 이 장관의 개헌론에 이어 신공항 백지화 등으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10개월 만에 다시 성사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은 정치권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누구보다 이 장관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 장관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이 있던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은 1964년 6월3일 군이 계엄령을 내려서 학생운동을 탄압한 그날”이라면서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 학생운동으로 군이 대학을 점령하고 위수령을 내리고 드디어 저는 대학에 제적과 함께 수배가 되었다. 제 인생의 갈림길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언뜻 보면 6ㆍ3 사태와 관련한 소회를 밝힌 것이지만 그 의미는 사뭇 복합적이다.

이 장관은 6ㆍ3 사태로 이 대통령과 ‘운동권 동지’로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이 장관은 중앙대 한일회담 반대구국투쟁위 위원장이었고, 이 대통령은 고려대 상과대 학생회장으로 뜻을 함께 했다. 젊은 혈기로 거리에 나섰던 두 사람의 공동의 적은 박 전 대표의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결국 이 장관은 시위 주동자로 지목돼 중앙대에서 제적당했고, 그 뒤 강제 징집됐다. 이 대통령도 당시 국회 앞 점거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6개월간 복역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47년 후 같은 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청와대에서 회동을 가졌다.

따라서 이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일각에선 이 장관이 박 전 대표를 경계하는 한편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 모종의 연대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더욱이 6ㆍ3 동지회가 정치권 안팎에서 이른바 ‘반(反)박정희 군단’으로까지 불려온 점 등을 비춰볼 때 이 장관이 작심을 하고 이 같은 글을 올렸을 것이라는 해석이 다분하다.

특히 6ㆍ3 동지회에는 이 장관뿐만 아니라 이 대통령도 몸을 담은 바 있어 이 대통령과 동질성을 강조하는 한편 박 전 대표와는 ‘거리두기’를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이 장관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ㆍ3 학생운동으로 인해 10여년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감옥생활을 지낸 이 장관은 자서전을 통해 “1964년 3월, 마냥 즐겁고 활기찼던 흑석동에서의 대학 새내기 생활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휴교를 불러온 한일회담 비준반대 시위, 이른바 6ㆍ3 사태는 배움의 꿈을 좌절시켰다”고 토로할 정도다.


청와대 ‘발언 절제’ 경고


때문에 당 안팎에선 이 장관의 속내를 친이 세력 보존을 위해 박 전 대표를 비롯 친박계와 대립을 불사하겠다는 것으로 읽었다. 한편에선 친박과 연합할 여지가 있는 친이상득계와 소장파 일부에 대해서도 경고의 뜻을 날린 것으로 해석했다. 이미 당내에선 이재오계를 제외한 친박계와 소장파, 이상득계의 연대설이 나돌았고, 지난 5ㆍ7 원내대표 경선에서 확연히 보여줬던 터다.

문제는 이 장관과 청와대 간의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을 앞둔 지난 1일 이 장관은 한경밀레니엄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유럽특사 활동 보고 이외의 다른 정치적 의미를 낳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당에 더 큰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견제성 발언을 던진 것이 화근이 됐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활동하는 국무위원이 대통령의 공식 정치 일정에 대해 마치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 한 참모는 이 장관을 향해 “국무위원이 대통령 행사를 앞두고 이런저런 평가를 사전에 내놓은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서 “발언할 때 절제를 조금 하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완곡하지만 사실상 이 장관에 대한 경고성 발언이다.

앞서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에 대해 “정치상황을 비롯한 국정현안, 국가의 미래에 관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폭넓게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 이번 회동은 박 전 대표가 유럽특사 방문 결과를 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형식이지만 일파만파 확산되는 저축은행 사태와 북한이 폭로한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 중산층 민심이반 등 레임덕 징조가 가시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 대통령으로선 ‘박근혜 역할론’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당 안팎으로 “박 전 대표와 회동을 앞두고 청와대가 친박”이라는 이야기가 나돈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장관으로선 서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장관 측은 ‘청와대가 진의를 오해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박 전 대표와 황우여 신임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지나친 예우가 지적된 만큼 청와대 회동에선 오해를 만들지 않길 바라는 의미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것. 이 장관의 한 측근은 “자칫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모두 부담이 될 수 있고, 황 원내대표 등 당의 공식 지도부도 난처해질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한 원론적 수준의 얘기였다”면서 “정치적 해석으로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뒷말은 여전하다. 지난 9일에 실시된 청와대 개편에서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유임된 데 따른 논란이었다. 당초 이 장관 측은 4·27 재보궐 선거 패배 직후 ‘강재섭 공천을 밀어붙인 임 실장이 분당을 선거 패배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실상 퇴진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임 실장을 유임시킴으로써 이 장관 측의 요구를 묵살한 셈. 재보선 전까지만 하더라도 ‘MB의 분신’으로 통하던 이 대통령과 이 장관 사이의 미묘한 변화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전날인 8일에는 이 대통령이 감기약ㆍ소화제 등 일반의약품(OTC)의 수퍼마켓 판매가 사실상 무산된 데 대해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을 거론하며 격노했다는 보도가 전해져 긴장상태의 연속이다. 진 장관은 이 장관의 최측근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여권 내 역학구도는 한층 더 복잡해졌다. 임 실장의 배후에는 박 전 대표와의 제휴를 모색하는 이상득 의원이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분당을 후보 공천을 놓고 격돌했던 이 의원과 이 장관 간 권력투쟁에 ‘박근혜 변수’까지 겹쳐 권력구도 방정식이 더욱 얽혀졌다.

여기에 당 안팎의 기류가 박 전 대표를 구심점으로 흘러가는 반면 이 장관을 비롯한 친이계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잇따른 이 장관의 ‘박근혜 발언’은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장관 측은 여전히 “6월3일을 맞아 6ㆍ3 동지회로서 올린 글일 뿐”이라면서 “정치적인 해석보다는 그 자체로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당 복귀 앞두고 조직 정비


한편, 이 장관의 조직 정비는 앞으로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지난 11일 ‘재오사랑’과 ‘조이21’ 등 자신의 지지 모임 회원 3,000여명과 함께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 뒤에 있는 흑성산에 오르며 조직 정비에 대한 시동을 걸었다. 앞서 지난 2일에는 친이 성향 민간보수단체인 ‘대통합국민연대’가 발족해 친이의 결집을 주도하고 있다. 실제 대통합국민연대는 2007년 당시 이명박 후보 대선 외곽조직이던 ‘선진국민연대’ 인원이 일부 포함돼 있어 친이 조직 재정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장관의 당 복귀는 청와대와 정부에서 내년 총선 출마자를 교통 정리하는 가을쯤 이뤄질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소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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