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여인의 화가 서양순
꽃과 여인의 화가 서양순
  • 대한뉴스
  • 승인 2006.05.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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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표현은 내 인생의 사명

시간이 지나도 끝이 없는 그림에의 열정 나타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과 여인’의 이미지를 과시하면서 밀턴의 ‘꽃피는 시트론의 숲’을 향유하는 작가 서양순. 해가 바뀌어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에도 왕성한 활동으로 주위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그는 1991년 열었던 현대백화점 미술관에서의 전시 이후 최근 프레스센터에서 15년 만에 개인전을 열고 오랜만에 미술계에 화려한 외출을 나섰다. 그의 작품은 아직도 식을 줄 모르는 뜨거운 열정을 표현하며 여전히 화폭에 순수한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으며 동료는 물론 후배들에게도 화가의 길이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 ‘꽃과 여인’의 화가

화가 서양순은 매년 10여 차례의 초대전 및 그룹전 등에 참여할 정도로 부지런한 화가이다. 특히 10여 년 동안 꽃과 여인에 초점을 맞춰 작품 활동을 해오기로 유명한 화가로서 그는 최근 45년 동안의 작품을 담은 화보 발간을 겸한 전시회를 열고 자신의 인생과 열정을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를 두고 평단에서는 “서양순 씨의 그림은 한마디로 온화하고 풍요로우며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꾸밈없이 직관하고 있으며 그것을 자기화하는 작업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화가”라고 회자되어진다.

그가 즐겨 다루는 테마는 주로 꽃과 여인이다. 때문에 주위에선 곧잘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다. 자칫 흔한 소재로 치부될 수 있는 꽃을 대상으로 한 그의 화폭에서는 향기로운 꽃의 숨결이 잔잔하게 배어나옴과 동시에 젊음과 해맑은 아름다움을 마음껏 표현해 내고 있어 대가의 작품은 소재여하를 막론하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난 그는 세종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다녀와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식품공학박사 오빠를 두고 있는 그는 1960년대에 외국으로 세미나를 자주 다닌 오빠 덕에 외국의 방대한 문화를 습득할 수 있었고 또한 남편의 배려가 계기가 돼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전했다.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먼 나라의 새로운 문물을 보고 배우는 것은 매우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당시 오빠가 해외로 세미나를 자주 다니면서 제게 외국의 박물관과 자연의 풍경 등을 담은 슬라이드 필름과 함께 세세한 내용을 적은 편지를 함께 보내줬어요”

그는 그 때 오빠로부터 받은 슬라이드 필름을 훗날 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소중한 미술교재로도 사용했다고 할 만큼 소중한 자료라고 전한다.

그는 자신의 삶에 늘 감사하며 그 마음을 담아 화폭에 그린다. 어려웠던 시절 외국의 문명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작가 서양순은 서양의 문명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준 오빠를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런 오빠를 둔 데에 자신은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붓을 놓지 않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일이죠. 오빠가 그 당시 어느 유명한 식품영양학 박사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집의 거실이 1,000여명을 수용할 정도로 아주 넓은 거실이었죠. 그 거실에는 몇 대에 걸쳐 내려져 오는 그림은 물론 가족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오빠가 말해 주었어요. 마치 미술관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고요. 오빠는 그 집을 방문하고는 제게 ‘너는 화가이면서도 어머니 초상화 하나라도 그렸니?’하는 질문을 제게 했어요”

그는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가슴 한켠에 끓어오르는 열정을 숨길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삶과 열정의 한가운데에 그림을 하겠다는 의지가 타올랐다고 한다.

이 때의 경험은 그의 화가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붓끝을 움직이기 힘들 때도, 세상사에 찌들어 그림 그리기가 너무 힘들 때도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있게끔 항상 마음을 다잡아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화가는 아름다움을 찾는 눈이 필요해

작가 서양순이 즐겨 다루는 꽃의 소재들은 장미, 모란, 무궁화, 해바라기, 목련, 양란, 수선화, 릴리, 연꽃 등 수십 종에 이르고 있지만 그 출생과 태생이 동양적인 것도 있고 서양적인 것도 있다. 외관상으로 보아서는 화종의 형태가 크고 풍만하고 탐스러운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올곧으면서도 단아한 작가의 성격과 일맥상통한다고 평단은 말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꽃과 여인’의 은밀하면서도 은유적인 표현에 작가의 인위적인 연출을 가미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에 남다른 특징이 있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과 여인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 그의 조형의지이자 사유의 철학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참되고 착한 것도 아름다운 것을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이 작가 서양순의 지론이다.

그는 어느 작가 못지않게 해외 스케치전을 많이 가져온 화가다. 그는 파리의 세느강이나 아프리카의 풍물 등 풍경화에도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다. 마치 ‘꽃과 여인’의 테마작가로 오인을 받기 쉽지만 이러한 양식은 그의 특별한 취향이 만들어낸 집념일 뿐 다양한 예술양식을 두루 섭렵해온 역량 있는 화가로 평단에서는 오래전부터 인정받고 있다.

꽃과 여인은 미의 상징이요 감동의 표상이고 화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탐닉했을 법한 소재와 대상이라 오랜 동안 화가들은 ‘꽃과 여인’을 즐겨 그려왔고 여기에 얽힌 많은 사연과 애정과 설화가 있다고 전하는 작가 서양순, 그는 단순하고 평범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 눈이 화가에게는 중요하다고 말한다.



■ 열정이 충만한 화가 ‘서양순’

작가 서양순은 자신의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오면서도 후학 양성에 대한 욕심도 있어 교사로서 재직한 적도 있다고 회고한다. 전라도 백산 중학교, 서울 계성여고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여 잘 가르친다는 소리도 들어 소문이 날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대학·문화센터에서 강사로 활약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열정이 충만한 사람이었기에 예술가로서 욕심이 끊이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과 창작열을 불태우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이 기반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기초 교육을 잘 받아온 터라 그림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지만 최고가 되기 위해 도전하기를 선택했던 것. 안정된 직장을 떠나 그는 과감히 사표를 내고 진정한 작가로 거듭나 자신의 미술관을 갖기 위해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다시 기본기를 충실히 하여 인물화를 공부하고 싶어 그는 무작정 명동에 있던 박득순 화백을 찾아가 지도를 받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실력을 다졌다.

그는 이때 완전히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작업방법을 박득순 화백에게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10년, 20년 된 그림도 색이 변하지 않는 변색을 막기 위해서는 화가가 색을 쓰는 법에 통달해야 한다는 것을 이때 배웠다고 한다.

작가 서양순은 자신에 대한 투자와 계발에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누드모델을 단독으로 써 보기도 하고 인체 연구를 위해 발레 연습소나 공연도 찾아다니면서 보는 등 그는 아무리 비싸더라도 그림을 위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끼니를 거르는 한이 있더라도 무엇이든 했을 정도로 당시에는 열정으로 가득 찼었다고 한다.



■ 화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

요즘 작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림의 작품성이 아무리 좋아도 자기가 선호하는 화풍이 아니면 소장하지 않는다면서 소장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작가 서양순은 말한다. 값이 비싸서 소장의 가치가 있는 것보다, 복잡한 그림보다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그림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술계의 변화의 바람에서도 화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인기나 유행이 있는 작품보다 자신의 독창적인 면을 발휘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 서양순은 남아있는 자신의 삶을 작품에 몰두하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그림에 열중하면서도 미술 저변에 대한 확대에도 힘쓰고자 한다고 전한다. 여류화가협회 회장을 하면서 순회전시회를 개최하고 울산, 포항, 공주, 전주 등 지방에서도 후원을 받아 전국적이고 활발하게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여성들의 문화저변 확대를 위한 그의 노력은 이미 미술계에서도 이름이 높다. 또한 주부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전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발로 뛰어다니고 비용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등 매사에 열성적인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다.

자신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보다 기쁘고 환희에 넘쳤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그는 꽃과 여인을 통해 인물의 동작, 표정 하나하나에 혼을 담고 있다.

신이 창조한 최고의 미(美)는 여인의 육체라는 말이 있듯이 아름답고 순수한 여인을 표현하여 자신의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와 사명에 대해 작가 서양순은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솔직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무슨 일에든지 쉽게 좌절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후덕한 인간성으로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으며 자신만의 색깔로 창조적인 자기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화가 서양순, 그의 작품세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음미하고 즐길 수 있는 열린 미술문화가 구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취재_이현진 기자/사진_이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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