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탑산업훈장’ 영광 정우금속공업(주) 이광원 회장
‘금탑산업훈장’ 영광 정우금속공업(주) 이광원 회장
동관이음쇠 40여년 외길 “세계 최고” 32개국서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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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0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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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김남규기자]정우금속공업(주) 이광원 회장은 지난 7월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4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산업계 최고 훈장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날 이광원 회장이 무엇보다도 크게 주목받는 이유는 오랫동안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분야에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현재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광의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이광원 회장을 만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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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나는 오직 기술개발뿐이었다”

“35년 외길을 걸어 온 것을 인정받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이광원 회장은 소외되는 품목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온 것에 대한 보답인 듯하여 더욱 감개무량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정우금속공업(주)의 자랑은 국내 최초로 동관이음쇠를 독자적 기술로 생산, 국내 건설시장에서 한 획을 그었다는 점이다.

1979년 국내에서는 자동화설비조차 생소했던 시절에 오로지 버려진 폐품 중고장비를 모아다가 분해와 조립을 수없이 시도하며 자체적인 기계제작에 의한 생산라인을 갖추었다는 점은 아직도 업계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이야기다.

당시 326대의 기계 중 253대를 자체 제작하는 놀라움에 더해 설계와 가공, 조립 등에 있어서 생산설비의 78%를 국산화해 수입대체 효과까지 가져오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자체 기술력을 확보해야만 살아나갈 수 있다는 이광원 회장의 신념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광원 회장이 중소기업인 최고의 상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우금속공업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품목이 있다. 바로 동관이음쇠다. 이 제품은 <세계 일류상품>으로도 선정되어 32개국에 수출되는 등 그동안 국내외 건설현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해 왔다. 정우금속공업은 특히 올 하반기 납 용접이 필요 없는 ‘프레스피팅 기술’로 만든 제품을 미주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이 제품은 조립이 간편하고 친환경적이어서 국내외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신제품’으로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시장환경 변화를 예측하여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정우금속공업의 성장동력원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제품 생산에 필요한 4500여종의 자체 금형을 확보하며 국내시장의 과반 이상을 점유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국내 건설경기가 침체일로를 겪으면서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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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원 회장은 “94년에 비해 국내 시장의 규모는 불과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어 위기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수출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에 따라 해외마케팅 강화를 위한 인력과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IS0 9001 품질경영시스템을 구축해 유럽, 미국, 일본 등 각 국가별 규격인증을 받아 놓았다.

정우금속공업을 창업한 이광원 회장의 뚝심과 노력은 현재도 유효하다. ‘불량품은 받지도, 만들지도, 보내지도 않는다’는 경영철학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또한, “오직 기술개발만이 기업의 살 길”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40여년을 뚝심으로 직접 발로 뛰며 하루에 4~5시간만 자며 노력하고 있다.

“남들은 땅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지만 나는 땅을 팔아서 제조업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사업하며 수익성이 좋을 때 다른 데에 신경 안 쓰고 오로지 기술개발에 투자하며 살아왔기에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광원 회장이 얼마만큼 기술개발을 중시하며 살아왔는지 묻어나는 말이다.

“고객은 우리의 주주다. 진심으로 고객을 대하라”

정우금속공업(주) 이광원 회장이 강조하는 것 중에 또 하나는 ‘고객만족’이다.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직원들에게 “고객이 우리의 주주다. 그들을 위해 일을 즐겁게 하라. 그리고 말만 앞세우지 말고 진심으로 고객을 만나라”고 당부하고 있다. 고객이 만족하지 못한 품질은 절대로 살아남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진심이 없는 거짓된 만남은 결국 고객도 알게 되며 이는 결코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이광원 회장은 신뢰를 무엇보다도 중요시 여긴다. 이러한 그의 철학이 그대로 나타난 일화도 있다. 1997년 말 국가부도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인 IMF가 터지고 말았다. 당시 모든 금속제품은 품귀현상이 빚어졌고, 천정부지로 뛰는 환율로 인해 자재 값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가격이 올랐다.

100원이었을 때 수입했던 원자재 가격이 환율효과만으로 200원이 되었고, 재고가 있는 업체 입장에서는 사둔 원자재를 서둘러 출하할 이유가 없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가격은 자연스럽게 오르고 그만큼 회사에는 이익이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자재를 구하지 못해 망해가는 단골 고객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어려울 때일수록 신뢰관계를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 자재 출하를 결정한 것이다. 그동안 거래하던 도매상이나 단골 고객들은 이러한 정우금속공업의 과감한 자재 출하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많은 기업들이 잇따라 부도가 나는 상황에서 큰 빛을 발했다.

1998년 외환위기로 적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정우금속공업은 오히려 매출이 전년대비 2배이상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고객이든, 경쟁사든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그래서 회사이름도 ‘정우(正友)’로 지었습니다.” 이광원 회장에게 고객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바로 함께 동고동락하는 ‘동반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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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도전의 길, 뚝심으로 버텼다”

“나의 외길에 대해 아무도 지지해주지 않아 마음이 아픈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욕심내지 않고자 하는 마음으로 버텨 왔습니다.” 이광원 회장은 1971년 10월 군에서 제대했지만 그해 12월 아버지께서 작고하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더구나 위로는 누나들이 있었지만 갑자기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다.

첫 직장으로 사촌형의 군납공장에 취업하여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직원수가 600~700명에 이르는 큰 회사로서 그래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월급쟁이로는 큰 비전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한진공업의 동파이프 공장을 견학하고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군납공장의 가죽은 24,000원인데 비해 동파이프는 한 동에 90~100만원씩 하여 큰 돈을 벌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이광원 회장이 외로운 경영자로 들어서는 운명적 시점으로, 그 때부터 그의 도전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광원 회장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직원 18명의 동파이프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3년만 배우고 창업하겠다는, 당시에는 다소 무모한 일 같았지만 그의 ‘야심’은 치밀하게 움직였다. “작은 회사이다 보니 모든 업무가 빨리 파악이 됐습니다. 입사한지 6개월 만에 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어 또 6개월 만에 총괄본부장이 되었습니다.” 이광원 회장은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기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고, 이로 인해 남보다 빠른 승진을 이울 수 있었다.

이 회장은 동파이프 제조공장을 퇴사 한 후 다시 3년간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에 있어 단순한 제조뿐만 아니라 유통은 회사매출과 직결되기에 상당히 중요하다. 그래서 이 회장은 청계천 유통시장에 뛰어들었고, 동파이프가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배우며 회사 창립에 필요한 기초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거쳐 정우금속공업은 창립되었고, 이 후 35년간 성장하는데 중요한 초석이 되기도 했다.

이광원 회장의 뚝심이 나타난 또 다른 일화로 수출과 관련된 일을 빼 놓을 수 없다.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국내에서 탄탄한 기반을 확보하던 정우금속공업이었다. 그러나 이광원 회장은 200억~300억원 규모의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수출에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보나 지식, 경험이 전무해서 좌충우돌해야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어렵사리 하나의 ‘승리의 탑’을 쌓았다. 88년 일본업체에 납품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불량품이 계속해서 나오고, 이를 보완하고자 일본에 기술이전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탈리아나 미국 등도 주시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오기가 아니었으면 아마 그때 포기했을 것입니다.” 이때부터 이 회장은 해외에 나갈 때마다 제품을 사들고 와 샘플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맨 땅에 헤딩이라도 한다는 신념으로 끊임없이 도전한 것이다.

당시 동관이음쇠의 경우 모든 국가에 공통되는 국제 규격이 없었다. 이광원 회장은 기술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웬만한 국가의 이음쇠 규격을 다 확보하게 되었다. 바닥 훑기식 기술력 확보는 큰 경쟁력이 되었다. 정우금속공업이 680여 개의 제품 규격을 확보하며 이를 토대로 4500여 가지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여기에서 생겨났다. 이광원 회장의 집요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비록 외롭고 힘든 도전이었지만 오늘의 정우금속공업을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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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건설경기,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점”

정우금속공업(주)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맨파워’를 꼽는다. 이 회사가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서 인정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보적인 품질관리능력과 기술력 외에도 인적 자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핵심 인력관리와 조직편제, 성과 보상에 이르는 인적자원 관리가 기술개발에 버금가는 중요한 경쟁력의 원천인 셈이다.

정우금속공업(주) 직원들의 뛰어난 창의력과 단결력은 이 기업의 미래를 밝게 한다. 한 예로 경기도 양주공장을 인근으로 확장 이전해야 하는 데 약 4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불과 45일 만에 ‘100% 이전 완료’를 성사시켰다. 공장 이전 업무를 체계적, 효율적으로 진행하여 공장 가동 중단을 최소한 것이다.

“사실 기술직원들에게 잘 해주고 싶습니다. 엔지니어들을 불러다 최고를 만들어주고 싶지만 재원을 뽑으면 얼마 안 있다가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광원 회장은 그동안 기술개발에 치중하며 동파이프에 관한한 수많은 인재들을 양성해 왔다. 국내 업계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해 온 것이 사실이어서 엔지니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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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회사 사옥은 ‘직원사랑’의 결실이다. “당시에 회사 여직원에게 물어보니, 밤낮없이 일하느라 집에서 빨래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한 사원들이 신입사원의 경우 멋진 건물을 보고 입사하기도 하며, 사내 연애를 위해서도 좋은 건물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사옥을 짓게 되었습니다.”

직원들이 보다 편안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이 회장은 현재의 회사 건물을 지은 것이다. 95년 당시 비록 자금이 부족해 5층밖에 짓지는 못했지만, 직원들에게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주고자 했던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건설경기의 어려움으로 새로운 신제품개발에도 힘든 부분이 있지만 곧 신제품이 나와 매출이 신장되면, 직원들의 처우개선을 더 해주고 싶다는 말에서 그의 따뜻한 ‘직원사랑’을 느낄 수 있다.

“국내의 경우 건설 경기가 침체된 상황이라 굉장히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수출을 하기 때문에 그나마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최근에는 중국의 저가공세에 밀려 다소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광원 회장은 품질로 경쟁을 하지만 중국의 무차별적인 중저가 공세 대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광원 회장은 앞으로 기술개발을 통해 해외시장 마케팅 개척에 더 주력할 방침이다. 조만간 획기적 신제품을 개발,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선보일 예정이다. 오랫동안 공을 들여 개발해 왔기에 어려운 건설경기와 소량 다품종의 원가비용에 따른 수익성 악화 등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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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원 회장은 아들과 딸이 모두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다. 어려운 길이기에 이를 물러주어야 하는 고민도 있다. 자신을 대신해서 창립과 수성을 넘어 도약으로 이끌 ‘후계문제’도 고심하고 있다. 도전과 외길의 이광원 회장에게는 자신을 이어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의 열정을 보여줄 사람이 필요한 셈이다.

정우금속공업(주)가 가진 가장 큰 경쟁력은 기술력과 품질, 고객관리와 뛰어난 마케팅 프로세스, 여기에다 강력한 맨파워다. 이 회장은 그동안 축적해온 경쟁력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도약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 한다. 일류기업으로서 돈이 아닌 브랜드의 가치로 승부하며 해외수출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동파이프 시장에서 오직 열정과 도전, 뚝심으로 자체개발로 기술력을 축적해온 40여년의 세월. 이제 이광원 회장은 남은 삶에 또 다른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비록 국내외 환경은 어렵지만, 예전에도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내 왔기에 신제품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에 기술로 승부를 걸 것이다. “고객과 직원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이광원 회장의 말에서 그가 추구하는 끝없는 도전이 승승장구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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