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미래의 삶을 보여주는 독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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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독일아리랑이 되어"
  • 대한뉴스
  • 승인 2014.10.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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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한청관 기자] 남해 파독전시관입구에 들어서면 "청춘, 독일아리랑이 되어"라는 문장과 마주하게 된다. 왜 청춘, 독일아리랑인가? 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을 해 본다. 1960 ~ 70년대 희망을 찾아 독일로 떠났던, 광부와 간호사들의 발자취를 한발 한발 따라 가보며, 힘겨웠던, 독일 생활 속에서 삶과 희망을 만나 볼 수 있다.


파독전시관의 사진 한 장 속에, “지하 1,200m 탄광으로 들어가는 파독 광부들의 아침은 'Gluck Aut'의 '살아서 돌아오라'는 인사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리운 고향과 가족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클릭 아우프'!”라는 글 속에서 "청춘, 독일아리랑이 되어"라는 주제를 이해할 수 있으며 공감하게 한다.

그때, 그 상황 속에서의 그들의 삶, 그 삶의 고통을 극복하고 초월된, 그래서 "행복한 미래를 위해 살아서 탄광 밖으로 나오자!" 했던 그들의 삶의 목적과 목표를 실현한 곳이 독일마을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독전시관을 통해서 독일마을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 좋았다.

[파독간호사]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실업문제 해소와 외화획득을 위해 해외인력수출의 일환으로 한국정부에서 독일(서독)에 파견한 1만여 명의 간호사들이다.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1960년대 한국은 심각한 실업난과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외화부족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였다. 반면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노동력 부족사태를 겪게 되었다. 특히 간병인과 같은 힘든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간호 인력의 부족은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간호 인력의 독일 송출은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송출은 기독교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민간교류의 형식이었다. 이후 1966년부터 독일 마인츠 대학의 의사였던 이수길 박사의 주선으로 대규모 간호사 파견이 시작되었으며, 이때부터 한국해외개발공사가 간호 인력의 모집과 송출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약 1만 226명의 간호 인력이 독일에 파견되었다.

파독간호사들이 매년 국내로 송금한 1천만 마르크 이상의 외화는 한국 경제개발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따라서 최근 이들의 국가발전에 대한 공헌에 대해 정부차원에서의 역사적 재평가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파독광부]

파독광부는 1963년부터 1980년까지 실업문제 해소와 외화획득을 위해 한국정부에서 독일(서독)에 파견한 7,900여 명의 광부들이다.


1960년대에 열악한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박정희 군사정권이 추진한 경공업 위주의 수출지향정책은 농촌 붕괴현상을 초래했다. 그 결과 막대한 실업과 외화 부족현상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한국정부는 광부와 간호사와 같은 노동력의 해외송출을 추진했다.

반면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인해 노동력 부족사태를 겪게 되었다. 많은 취업의 기회가 보장된 상황에서 독일인들은 힘든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일자리를 외면하게 되었고, 그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외국인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63년 파독광부 500명 모집에 4만 6,000여 명이 지원할 정도로 당시 한국의 실업난은 심각한 상태였다. 3년 계약의 파독광부들에게는 매월 600마르크(160달러)의 높은 수입이 보장되었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독일로 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광산 노동의 경험이 없던 초심자였기에 크고 작은 부상과 후유증에 시달렸다.

광부의 파견은 1963년 12월 16일 한국정부의 임시고용계획에 관한 한국노동청과 독일탄광협회 간의 협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협정에 따르면 한국 광부의 파견조치는 “한국 광부의 탄광지식을 향상시켜 한국 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표에서 추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독일의 광부인력 부족현상을 해소하는 동시에 미국이 독일에게 요청했던 한국 재건지원의 약속 이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고자 했던 독일정부의 의도와 실업난과 외화획득을 위해 해외인력수출을 원했던 한국정부의 이해가 부합되어 이루어진 조치였다.

[파독전시관]

파독전시관의 전체적인 시설은 대지면적 7,006㎡에 도이처플라처라 불리는 광장을 중심으로 독일문화홍보관, 게스트하우스, 독일전통음식을 취급하는 레스토랑, 기념품 판매점이 배치돼 있고 지하에는 파독 근로자들의 유물과 역사기록물이 있는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광부가 지하굉도로 내려가듯 전시관 관람은 곧장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시작된다.

이곳은 타임터널이다. “1960~1970년대 희망을 찾아 독일로 떠났던 광부와 간호사들의 발자취를 한발 한발 따라가 보며 힘겨웠던 독일생활 속에서 삶과 희망을 만납니다”라는 설명으로 시작되는 타임터널은 현재로부터 1960년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타임터널이 끝나는 지점에서 방향을 틀면 바로 탄광의 굉도가 시작된다. 석탄을 실어 나르는 탄차의 궤도소리를 들으며 점점 더 지하로 내려가는 관람객은 탄광의 내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독일의 탄광에서 일했던 젊은이들은 `글뤽 아우프!`라고 외쳤다고 한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 살아서 탄광 밖으로 나오자!”라는 뜻이란다.

굉도가 끝나는 곳인 지하 2층에서는 자료전시실로 연결된다. 광부들이 일했던 독일의 광산들을 사진으로 배치하고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도구들을 그들이 실제로 일했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배경으로 함께 보여준다.

[행복한 미래의 삶을 보여주는 독일마을 ]

독일마을은 1960년대 어려운 시기에 조국근대화와 경제발전에 헌신한 독일거주 교포들의 정착생활 지원과 조국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독일의 이국문화와 전통문화예술촌을 연계한 특색 있는 관광지 개발을 위하여, 지난 2001년부터 천연기념물 제150호가 있는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일원 99,174㎡(30,000여평)의 부지에 남해군에서 30여억 원을 들여 기반을 조성하여 70여동을 지을 수 있는 택지를 분양했다.


건축은 교포들이 직접 독일의 재료를 수입하여 전통 독일식 주택을 신축하고 있는데 지금은 15동 정도가 완공되어 독일 교포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독일에 가 있는 동안은 관광객을 위한 민박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바로 앞으로 펼쳐진 방조어부림의 시원한 바다와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드라이브코스인 물미해안도로가 있다.

독일마을은 이국문화와 인근 전통문화예술촌을 연계한 특색 있는 관광지 개발을 위한 독창적인 컨셉으로 구상돼 지난 2001년부터 천연기념물 제150호가 있는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일원 3만여 평 부지에 유럽의 작은 마을 통째 옮겨 놓은 것 같은 모습의 독일마을이 조성돼 있어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남해군은 30여억 원을 들여 기반을 조성해 70여동을 지을 수 있는 택지를 분양했고 건축은 교포들이 직접 독일의 재료를 수입해 전통 독일식주택을 신축하고 있는데 지금은 29동 정도가 완공되어 독일 교포들이 생활하고 있다.

독일마을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청춘! 독일아리랑이 되어!” 라는 독일마을 주민들의 이야기 영상자료이다.

독일마을 주민들의 이야기 영상자료를 통해서 그 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우리들의 삶의 목적과 목표를 뒤 돌아 보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들은 "행복한 미래를 위해 살아서 탄광 밖으로 나오자!"라고 말했다. 우리들 또한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고통을 극복하고 초월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 우리들의 "행복한 미래"는 우리들 스스로 만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며, 우리들의 행복한 미래가 곧 국가의 미래와 희망을 보여주고 있음을 체험해 본다.

파독전시관을 통해서 독일마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내 노후의 삶도 계획해 본다. 먹고 살기위해서 도시에서 살았다면, 이제는 귀촌을 해, 자유로운 삶을 살아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먹고 살기위해서 도시에서의 삶, 행복의 미래는 도시로부터 탈출, 자연으로 돌아가 나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그러한 삶을 보여주는 독일마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귀촌의 미래와 꿈을 심어준다.

독일마을은 "행복한 미래를 위한" 삶의 현장이었다. 이 곳 독일마을과 파독전시관의 여행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이 "행복한 미래를 위해 살아서 탄광 밖으로 나오자!"했던 그들의 삶의 목적과 목표, 그것은 곧 우리들의 삶의 문제이며 극복하고 초월되어져야 할 그 무엇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찾아 가는 길은 △남해고속도로 진교IC → 남해대교 → 남해읍 → 상주 은모래 Beach → 미조 → 독일마을 △남해고속도로 사천IC → 창선ㆍ삼천포대교 → 삼동면 → 독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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