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현지취재 3탄(歷史의 고장, 타이난)
대만 현지취재 3탄(歷史의 고장, 타이난)
  • 대한뉴스
  • 승인 2007.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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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군대의 항복을 받는 정성공 장군)

대만섬은 원래 원주민들이 살았던 섬.

16세기 중엽부터 네덜란드인들이 들어와 요새를 쌓고, 자기네들의 군사 전략지로 삼으려했다.

그러나 明나라 말기, 정성공(鄭成功)장군이 중국군대를 이끌고 와서, 네덜란드인과 전투를 벌여 그들을 몰아낸다.

이때부터 대만섬은 중국의 일부 영토가 되는 것이다


(당시 네덜란드 군인의 투구)

네덜란드인이 처음 들어온 곳이 대만의 ‘타이난’ 지역이었고, 그들의 요새가 있던 곳 역시, 타이난, 그리고 정성공 장군이 네덜란드인을 격파하고 항복을 받아낸 안평(安平)요새가 있던 곳이 타이난 이다.


그러기에 대만의 영웅은 바로 정성공 장군이다.

대만사상 처음으로 외세를 몰아낸 영웅지존이 바로 그 이기 때문이다.

이후 정성공은 대만에 유교문화를 들여오고, 원주민들에게 文治主義사상을 퍼뜨린다.


대만에서 가장 먼저 유교를 받아들인곳도, 가장 먼저 학교가 세워진곳도 타이난 이다.

지금도 타이난에는 당시에 세워진 공자사당이라던가, 문신을 모시는 사당(우리나라의 서원과 비슷)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지금도 대만사람들은 대학이나 고시합격을 기원할때는 이곳 타이난에 있는 공자사당이나 문신(文神)사당에 와서 기도를 한다.


(타이난에 있는 공자 사당)

정성공과 네덜란드 군대가 전투를 벌였던 타이난에는 지금도 당시에 네덜란드군대가 사용하던 대포가 남아있다. 떠 많이 허물어졌지만, 벽돌로 쌓은 네덜란드인들의 요새가 남아있다.

타이난 사람들에 따르면, 이곳은 산호가 많아 당시 네덜란드 군대가 요새를 쌓을때 산호초를 가져다 일종의 접착제같이 쌓은 벽돌사이에 붙였다는 것.


네덜란드 군대의 요새가 있던 그곳에는 이른바 ‘용의 나무’라는 커다란 나무들이 몇백년의 역사를 보아왔다.


카오슝(高雄)에서 불과 KTX로 10분거리에 있는 타이난은 분명 역사의 고향임에는 틀림없다.


국제부 이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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